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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식(朴殷植, 1859~1925)은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의 논설로 애국 계몽 운동을 펴고, 망명 뒤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지어 민족의 '혼'을 강조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박은식

호는 백암(白巖)이고 황해도 황주 출신이다. 성리학자로 이름을 얻었으나 1898년 독립 협회에 들어가 개화사상으로 돌아섰다. 이후 언론·교육·학회 활동으로 국권 회복을 위한 실력 양성에 힘썼고, 1911년 만주로 망명해 중국 관내에서 역사 서술과 독립운동을 이어 갔다.[1]

애국 계몽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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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 - 1898년 창간된 『황성신문』의 주필이 되었고,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도 일했다. 1910년 8월까지 『황성신문』 주필로 논설을 썼다.
  • 학회 - 대한 자강회에 참여하고, 서우 학회와 이를 이은 서북 학회를 이끌었다. 서북 학회 안에 서북 협성 학교를 세웠다.
  • 유교 개혁 - 1909년 「유교구신론」을 발표해 유교를 백성 중심으로 고치고, 실천을 중시하는 양명학을 받아들이자고 했다. 같은 해 대동교를 세웠다.

망명 뒤의 역사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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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통사』(1915) - 1864년 흥선 대원군 집권부터 1911년 105인 사건까지 일본의 침략 과정을 정리한 역사서이다. "나라의 형체는 없어졌어도 정신(혼)이 살아 있으면 나라는 다시 살아난다"는 국혼 사상을 내세웠다.[2]
  • 『한국독립운동지혈사』(1920) - 1884년 갑신정변부터 1920년까지의 독립운동, 특히 3.1 운동의 전개와 일제의 탄압을 기록했다.
  • 이 밖에 안중근·이순신 등 영웅의 전기를 썼다.
  • 상하이에서 신규식 등과 동제사, 신한 혁명당 등에 참여했다. 1917년에는 신규식·조소앙 등과 대동단결 선언을 발표해 국민 주권에 바탕을 둔 임시정부 수립을 제창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독립신문』 사장 등을 맡았고, 1925년 이승만이 탄핵된 뒤 제2대 대통령에 올랐다. 임시정부 헌법을 국무령 중심의 내각 책임 지도제로 고친 뒤 물러났고, 그해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났다.

민족주의 사학자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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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핵심 개념 대표 저술·활동
박은식 국혼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
신채호 아와 비아의 투쟁 「독사신론」, 『조선상고사』, 「조선 혁명 선언」
정인보 얼 『5천 년간 조선의 얼』, 조선학 운동
문일평 조선심 조선학 운동
백남운 사회 경제 사학 『조선사회경제사』, 정체성론 비판
이병도 등 실증 사학 진단 학회
  1. ↑ 박은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한국통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