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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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1919~1945)는 3.1 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되어 1945년 광복 때까지 27년 동안 민주 공화제의 독립 국가 건설을 목표로 독립운동을 이끈 임시 정부이다.
- 연통제와 교통국 - 1919년 국내와 연락하는 비밀 행정 조직인 연통제를 두어 도·군·면에 책임자를 임명하고, 교통국을 두어 정보와 자금을 주고받았다. 교통국의 거점은 만주 안둥(단둥)의 이륭양행이었다. 1922년 무렵 일제에 발각되어 무너졌다.
- 독립 공채 -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려고 독립 공채를 발행했고, 국민 의연금도 모았다.[2]
- 외교 활동 - 김규식을 파리에 보내 파리 위원부를 두었고, 미국에 구미 위원부를 두었다. 국제 연맹에 제출하려고 임시 사료 편찬회(총재 안창호)가 『한일 관계 사료집』을 펴냈다.
- 기관지 - 『독립신문』(1919년 창간, 상하이)을 발행했다.
- 군사 활동 - 1920년을 독립 전쟁 원년으로 선포하고, 만주의 서로 군정서·북로 군정서 등을 간접 지휘했다. 1924년 직할 부대로 육군 주만 참의부를 두었다.
- 국민 대표 회의(1923) - 연통제 붕괴, 이승만의 위임 통치 청원 논란 등으로 갈등이 커지자 상하이에서 국민 대표 회의가 열렸다. 임시 정부를 고쳐 쓰자는 개조파와 새 정부를 세우자는 창조파가 맞서다 결렬되었다.
- 체제 개편 - 1925년 이승만을 탄핵하고 박은식을 제2대 대통령으로 세운 뒤 국무령 중심의 내각 책임제로 고쳤고, 1927년 국무 위원 중심의 집단 지도 체제로, 1940년 주석 중심 체제로, 1944년 주석·부주석(김구·김규식) 체제로 바꾸었다.
- 한인 애국단(1931) - 김구가 침체를 벗어나려 만든 의열 단체이다. 1932년 이봉창이 도쿄에서 일왕에게 폭탄을 던졌고, 윤봉길이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군 장성들을 처단했다. 윤봉길 의거 뒤 중국 국민당 정부가 임시 정부를 적극 돕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