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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결의(桃園結義)는 의형제를 맺음을 이르는 말로, 《삼국지연의》에서 유비(劉備)·관우(關羽)·장비(張飛)가 복숭아밭(桃園)에서 의형제를 맺은 데서 유래한 한자성어이다.[1]

본래는 핏줄이 다른 사람들이 형제의 의리를 맺는 일을 가리킨다. 오늘날에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한 목표를 위해 굳게 손을 잡는 것을 두루 이르며, 창업 동료, 선거 연대, 기업 간 제휴 같은 데에도 “도원결의를 맺다”라고 쓴다.

중국어에서는 ‘도원결의(桃園結義)’ 또는 ‘도원삼결의(桃園三結義)’라고 하고,[2] 일본어에서는 ‘도엔노 지카이(桃園の誓い)’나 “도원에서 의를 맺다(桃園の義を結ぶ)”라고 한다.[3]

한자 음 기본 의미 성어 안의 의미
桃 도 복숭아(나무) 복숭아나무
園 원 동산, 밭 과수원, 뜰
結 결 맺다 맺다
義 의 옳다, 의리 의리(로 맺은 관계)

‘복숭아밭에서 의(義)를 맺다’라는 짜임이다. 여기서 ‘義’는 ‘의형제(義兄弟)’, ‘의부(義父)’처럼 핏줄이 아닌 의리로 맺은 관계를 가리킨다.

《삼국지연의》 제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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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연의》 첫머리에 나온다. 후한 영제 때 황건적이 일어나자 유주 태수 유언(劉焉)이 의병을 모으는 방을 붙였다. 탁현(涿縣)에서 방을 보고 탄식하던 유비에게 장비가 말을 걸었고, 두 사람이 주막에서 술을 마시던 중 군에 들어가려고 성으로 가던 관우가 합류했다. 세 사람은 장비의 장원으로 가서 큰일을 의논했다.[4]

飛曰:「吾莊後有一桃園,花開正盛;明日當於園中祭告天地,我三人結為兄弟,協力同心,然後可圖大事。」玄德、雲長齊聲應曰:「如此甚好。」次日,於桃園中,備下烏牛白馬祭禮等項,三人焚香再拜而說誓曰:「念劉備、關羽、張飛,雖然異姓,既結為兄弟,則同心協力,救困扶危;上報國家,下安黎庶;不求同年同月同日生,只願同年同月同日死。皇天后土,實鑒此心。背義忘恩,天人共戮!」誓畢,拜玄德為兄,關羽次之,張飛為弟。

[4]

“장비가 말했다. ‘내 장원 뒤에 복숭아밭이 있는데 지금 꽃이 한창이오. 내일 그곳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내 알리고, 우리 셋이 형제를 맺어 힘과 마음을 합친 뒤에 큰일을 꾀합시다.’ 현덕과 운장이 한목소리로 ‘그거 참 좋소’ 하고 답했다. 이튿날 복숭아밭에 검은 소와 흰 말 등 제물을 갖추고, 세 사람이 향을 피우고 두 번 절한 뒤 맹세했다. ‘유비·관우·장비는 비록 성은 다르나 이미 형제를 맺었으니, 마음과 힘을 합쳐 곤경에 빠진 이를 구하고 위태로운 이를 돕겠습니다.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히 하겠습니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나기를 바라지는 않으나,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신과 땅의 신은 이 마음을 굽어살피소서. 의리를 저버리고 은혜를 잊는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이소서!’ 맹세를 마치고 현덕을 맏형으로, 관우를 둘째로, 장비를 막내로 삼았다.”

오늘날 널리 읽히는 청나라 모종강(毛宗崗) 본에서는 제1회 제목이 ‘복숭아밭에서 잔치하며 호걸 셋이 의를 맺다(宴桃園豪傑三結義)’이다.[4] 이보다 이른 명나라 가정 원년(1522) 간본 《삼국지통속연의》에서는 제1회 제목 자체가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내고 도원에서 결의하다(祭天地桃園結義)’여서, 네 글자 ‘桃園結義’가 그대로 보인다.[5]

판본에 따른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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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본의 줄거리는 모종강본과 조금 다르다. 가정본에서는 흰 말을 잡아 하늘에, 검은 소를 잡아 땅에 제사 지내자고 하고, 맹세를 마친 뒤 세 사람이 “함께 현덕의 노모께 절했다(同拜玄德老母)”는 대목이 있다.[5] 모종강본에는 이 구절이 없다. 나무위키 등에는 유비의 어머니를 함께 찾아뵙는 식의 장면이 모두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소설 같은 후대 작품에서 덧붙여졌다는 설명이 있으나, 결의 뒤 유비의 노모에게 절하는 대목 자체는 1522년 가정본에 이미 있다.[5]

연의 이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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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밭 결의는 나관중이 처음 지어낸 것이 아니다. 원나라 때 간행된 강담 대본 《삼국지평화(三國志平話)》에 이미 ‘도원결의’ 대목이 있고, 원대 잡극 가운데에도 무명씨의 《유관장도원삼결의(劉關張桃園三結義)》가 있었다.[6] 원·명 무렵의 무명씨 잡극 《관운장천리독행(關雲長千里獨行)》에서도 유비가 “우리 셋은 도원에서 결의하여 하늘에 맹세하기를, 같은 날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고 같은 날 죽기를 바란다고 했다(俺三人在桃園結義,曾對天盟誓,不求同日生,只願同日死)”고 스스로 밝힌다.[7] 나관중은 이런 민간 이야기를 바탕으로 맹세에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히 한다(上報國家,下安黎庶)”는 대의를 넣어 다듬었다.[6]

정사 《삼국지》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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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에는 복숭아밭에서 의형제를 맺었다는 기록이 없다.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도 이것이 사실(史實)이 아니라고 밝힌다.[8] 다만 세 사람이 형제처럼 지냈다는 기록은 여러 곳에 있다.[9]

先主為平原相,以羽、飛為別部司馬,分統部曲。先主與二人寢則同床,恩若兄弟。而稠人廣坐,侍立終日,隨先主周旋,不避艱險。

[9]

“선주(유비)가 평원상이 되자 관우와 장비를 별부사마로 삼아 부대를 나누어 거느리게 했다. 선주는 두 사람과 잠잘 때 한 침상을 쓰며 은정이 형제 같았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는 온종일 곁에 모시고 서 있었고, 선주를 따라 어떤 험한 일도 피하지 않았다.”

관우는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을 때 “나는 조공이 나를 후하게 대하는 것을 잘 알지만, 유 장군에게 두터운 은혜를 입었고 함께 죽기로 맹세하였으니 저버릴 수 없다(吾受劉將軍厚恩,誓以共死,不可背之)”고 말했고, 〈장비전〉은 “관우가 몇 살 위였으므로 장비는 그를 형으로 섬겼다(羽年長數歲,飛兄事之)”고 적는다.[9] 곧 ‘형제 같았다(恩若兄弟)’는 정사의 기록이 송·원 이래의 이야기꾼들을 거치며 도원결의라는 극적인 장면으로 자란 것이다.[6]

한국과 일본의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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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가 조선에 널리 읽히면서 도원결의도 일찍부터 쓰였다. 1613년(광해군 5) 이른바 칠서(七庶)의 옥 때 심우영(沈友英)은 공초에서 “서양갑(徐羊甲)이 어리석고 객기가 많아 스스로를 제갈량과 왕맹에 견주며 도원결의처럼 하려 했을 뿐(欲如桃園結義耳)”이라고 했다. 광해군이 “도원결의는 무엇을 하려 한 것이냐”고 다그치자 말이 막혀 “서투른 문자를 잘못 썼다”고 답했다.[10] 임진왜란 뒤 관왕묘가 세워지며 관우 숭배가 퍼지자, 조찬한(趙纘韓)은 관우를 기리는 시에서 “대춧빛 얼굴은 우러러보기에 엄숙하고, 도원결의는 높구나(棗面瞻儀峻。桃園結義高)”라고 읊었다.[11]

일본에서는 《일본국어대사전》이 “도원에서 의를 맺다(桃園の義を結ぶ)”의 첫 용례로 샤레본(洒落本) 《야한차즈케(夜半茶漬)》(1788)를 든다.[3]

  • 세 친구는 대학 시절 도원결의를 하고 함께 회사를 세웠다.
  • 오픈소스 보안 도구를 만들자며 도원결의한 개발자들이 십 년째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 두 정당의 도원결의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깨졌다.
  • 세 사람의 인연은 혼인으로도 이어졌다. 정사 《삼국지》에 따르면 유비의 아들 후주 유선(劉禪)의 첫 황후 경애황후는 장비의 맏딸이고,[12] 관우의 손자 관통(關統)은 공주에게 장가들었다(尚公主).[9]
  • 카드 게임 《매직: 더 개더링》의 1999년 확장판 《포털 삼국지(Portal Three Kingdoms)》에는 ‘도원결의(Peach Garden Oath)’라는 카드가 있으며, 카드의 글귀에 연의의 맹세가 인용되어 있다.[13]

유의어와 관련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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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의형제(結義兄弟): 의로써 형제의 관계를 맺음. 또는 그렇게 관계를 맺은 형제.[14]
  • 도원삼결의(桃園三結義), 도원맹(桃園盟): 중국어에서 함께 쓰는 형태.[2]
  • 금란지교(金蘭之交): 친구 사이의 매우 두터운 정.
  • 관포지교(管鮑之交): 관중과 포숙의 사귐이라는 뜻으로, 우정이 아주 돈독한 친구 관계.
  • 수어지교(水魚之交):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물고기와 물의 관계라는 뜻으로, 아주 친밀하여 떨어질 수 없는 사이. 유비가 제갈량과의 관계를 두고 한 말에서 나왔다.
  1.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도원결의”,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8F%84%EC%9B%90%EA%B2%B0%EC%9D%98, 확인날짜=2026-09-30.
  2. ↑ 2.0 2.1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桃園結義”,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2611, 확인날짜=2026-09-30.
  3. ↑ 3.0 3.1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桃園の義を結ぶ”,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A1%83%E5%9C%92%E3%81%AE%E7%BE%A9%E3%82%92%E7%B5%90%E3%81%B6, 확인날짜=2026-09-30.
  4. ↑ 4.0 4.1 4.2 나관중(羅貫中),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모종강본 제1회 〈연도원호걸삼결의 참황건영웅수립공(宴桃園豪傑三結義 斬黃巾英雄首立功)〉.
  5. ↑ 5.0 5.1 5.2 나관중(羅貫中),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가정 임오본(1522) 제1회 〈제천지도원결의(祭天地桃園結義)〉.
  6. ↑ 6.0 6.1 6.2 참고: 선보쥔(沈伯俊), 〈룽강한화(龍崗閒話)〉, 위안류출판(遠流出版) 삼국대본영(三國大本營), https://www.ylib.com/sango/luoka/luoka061130.asp, 확인날짜=2026-09-30.
  7. ↑ 무명씨, 《관운장천리독행(關雲長千里獨行)》 설자(楔子).
  8. ↑ 《고사성어를 아는 사전(故事成語を知る辞典)》, “桃園の義を結ぶ”,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A1%83%E5%9C%92%E3%81%AE%E7%BE%A9%E3%82%92%E7%B5%90%E3%81%B6, 확인날짜=2026-09-30.
  9. ↑ 9.0 9.1 9.2 9.3 진수(陳壽), 《삼국지(三國志)》 권36 〈촉서(蜀書)·관장마황조전(關張馬黃趙傳)〉.
  10.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중초본 23권, 광해 5년 5월 4일 신유 4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oa_10505004_004, 확인날짜=2026-09-30.
  11. ↑ 조찬한(趙纘韓), 〈관왕(關王) 20운〉, 《현주집(玄洲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30.
  12. ↑ 진수(陳壽), 《삼국지(三國志)》 권34 〈촉서(蜀書)·이주비자전(二主妃子傳)〉.
  13. ↑ “Peach Garden Oath”, Scryfall, https://scryfall.com/card/ptk/15/peach-garden-oath, 확인날짜=2026-09-30.
  14.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결의형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2%B0%EC%9D%98%ED%98%95%EC%A0%9C, 확인날짜=20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