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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 민주 항쟁(釜馬民主抗爭, 1979)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지금의 창원)에서 학생과 시민이 유신 체제에 반대해 일으킨 항쟁으로, 10·26 사건을 불러 유신 체제가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 말 중화학 공업에 대한 과잉 투자와 제2차 석유 파동으로 경제가 크게 어려워졌다. 신발·의류 같은 노동 집약 제조업이 몰려 있던 부산·마산은 부도와 실업의 타격이 특히 컸다. 1979년 8월 YH 무역 여성 노동자들이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다 경찰의 강제 해산 과정에서 한 사람이 숨졌고, 신민당 총재 김영삼이 미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를 비판하자 여당은 10월 4일 그의 국회의원직을 박탈했다(김영삼 제명). 부산은 김영삼의 정치적 근거지였다.[1] YH 무역 농성의 경위는 YH 무역 사건 문서에 있다.

  • 10월 16일 부산 - 부산대 학생들이 유신 철폐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했고 동아대 학생들이 합류해 시내 중심가로 나아갔다.
  • 시민 합세 - 17일부터 노동자·상인·고교생 등 시민이 대거 가담하며 파출소·방송국 등을 공격하는 시민 항쟁으로 번졌다.
  • 비상계엄 - 정부는 10월 18일 부산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 마산 - 18일 경남대 학생들이 시위를 시작해 마산으로 번졌고, 정부는 20일 마산·창원에 위수령을 내려 군을 투입했다.
  • 시위 대응을 놓고 강경 진압을 주장한 경호실장 차지철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립했고, 10월 26일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쏘아 죽였다(10·26 사건). 이로써 박정희 정부의 유신 체제가 무너졌다.
  • 2019년 10월 16일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다른 민주화 운동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특징 운동
3·15 부정 선거에 항의, 이승만 하야 4.19 혁명(1960)
야당 총재(김영삼)의 국회의원 제명으로 촉발, 유신 체제 붕괴의 계기 부마 민주 항쟁(1979)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에 항의, 시민군 조직 5.18 민주화운동(1980)
호헌 철폐,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끌어냄 6월 민주 항쟁(1987)
  1. ↑ 부마민주항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