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H 무역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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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 무역 사건(1979)은 1979년 8월 가발 수출업체 YH 무역의 여성 노동자들이 회사의 폐업에 항의해 서울 마포의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하다가, 8월 11일 새벽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노동자 김경숙이 숨진 사건으로,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 제명과 부마 민주 항쟁으로 이어져 유신 체제 붕괴의 계기가 되었다.
YH 무역은 1966년 장용호가 세운 가발 회사로, 1970년대 초에는 종업원 4,000여 명에 수출 순위 15위에 오를 만큼 컸다. 1975년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1970년대 후반 가발 산업이 기울자 경영주는 회사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고 인원 감축과 위장 휴업을 하다가 폐업을 공고했다.[1]
- 폐업과 농성 - 노동자들은 회사 정상화를 요구하며 기숙사에서 농성했고, 갈 곳을 찾다가 1979년 8월 9일 노동자 187명이 야당인 신민당 당사로 들어가 농성을 시작했다. 김영삼 총재가 농성장을 찾아 노동자들을 격려했다.
- 강제 진압 - 8월 11일 새벽 2시 무렵 경찰 1,000여 명이 당사에 들이닥쳐 노동자들을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신민당 의원과 기자들도 폭행을 당했다.
- 김경숙의 죽음 - 노조 집행 위원 김경숙(당시 21세)이 당사 뒤편에서 중상을 입은 채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경찰은 그가 스스로 손목을 긋고 투신했다고 발표했으나,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졌다고 밝혔다.[2]
- 구속 - 노조 지부장 최순영 등 노조 간부와, 노동자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인명진·문동환 목사, 이문영 교수, 시인 고은 등이 구속되었다.
- 신민당은 18일 동안 당사 농성을 이어 가며 정부를 비판했다. 정부와 여당은 법원을 통해 김영삼의 총재 직무를 정지시켰고, 김영삼이 미국 신문과의 회견에서 정부를 비판하자 1979년 10월 4일 그의 국회의원직을 박탈했다.
- 이에 반발한 신민당 의원들이 모두 사퇴서를 냈고, 김영삼의 근거지인 부산과 마산에서 10월 16일 부마 민주 항쟁이 일어났다. 이어 10·26 사건으로 박정희 정부의 유신 체제가 무너졌다.
- 폐업 공고 날짜는 백과사전이 8월 6일로, 우리역사넷은 회사 공고문 기준 4월 30일로 적고 노동자 호소문에는 첫 폐업 공고가 3월 30일로 나와 기록마다 다르다.
| 사건 | 연도 | 내용 |
|---|---|---|
| 전태일 분신 | 1970 | 평화 시장 노동자, 근로 기준법 준수 요구 |
| 3.1 민주 구국 선언 | 1976 | 명동 성당, 긴급 조치 철폐 요구 |
| YH 무역 사건 | 1979 | 신민당사 농성, 김경숙 사망 |
| 부마 민주 항쟁 | 1979 | 김영삼 제명에 반발, 부산·마산 |
- ↑ YH무역여공사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 ↑ YH 무역 근로자의 신민당사 농성, 우리역사넷(사료로 본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