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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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武寧王, 462~523)은 백제의 제25대 왕(재위 501~523)으로, 한성을 잃고 웅진으로 옮긴 뒤 흔들리던 백제를 안정시키고 지방에 22담로를 두어 왕족을 보냈으며 중국 남조 양과 활발히 교류한 왕이다.
중국 『양서』 백제전은 백제가 도성을 고마(固麻)라 하고 지방의 읍을 담로라 하며, 22개의 담로에 왕의 자제와 종족을 나누어 보내 다스렸다고 전한다. 이 기록은 무령왕 때 백제가 양에 보낸 사신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무령왕이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 근거로 쓰인다.
즉위 직후부터 고구려와 말갈의 침입에 맞섰다. 501년 고구려 수곡성을 습격했고, 507년 고구려 장군 고로가 말갈과 함께 한성을 노리자 이를 물리쳤으며, 512년에는 직접 군사 3,000명을 이끌고 위천 북쪽에서 고구려군을 크게 이겼다.[1]
512년과 521년 양에 사신을 보냈다. 521년 양에 보낸 국서에서 백제가 "여러 차례 고구려를 깨뜨려 다시 강국이 되었다(更爲强國)"고 밝혔고, 양으로부터 '사지절도독백제제군사영동대장군' 작호를 받았다. 양과의 교류는 무령왕릉의 벽돌무덤 양식과 출토 유물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제방을 쌓아 농토를 넓히고, 놀고 먹는 자를 농사짓게 하였으며, 굶주린 백성을 구휼했다. 이러한 안정 위에서 다음 왕인 성왕은 사비 천도와 중흥을 추진할 수 있었다.
무령왕릉은 공주 송산리 고분군(지금의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에 있는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이다. 1971년 배수로 공사 중에 도굴되지 않은 채로 발견되었다. 무덤 안의 지석(묘지석)에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라고 새겨져 있어, 삼국 시대 왕릉 가운데 주인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드문 무덤이 되었다.[2]
- 벽돌무덤: 연꽃무늬 벽돌로 쌓은 아치형 천장의 무덤으로, 중국 남조 양의 무덤 양식을 받아들였다.
- 출토 유물: 금제 관꾸미개, 무덤을 지키는 돌짐승 진묘수, 지석, 일본산 금송으로 만든 목관 등이 나왔다. 중국 남조와 왜와의 교류를 함께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