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금동 대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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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 대향로(百濟 金銅 大香爐)는 1993년 충청남도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 사비 시기의 금동 향로로, 용이 받친 연꽃 몸체 위에 신선 세계의 산을 뚜껑으로 얹고 꼭대기에 봉황을 올린 백제 금속 공예의 대표작이다.
높이 61.8cm로 국보이며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다. 1993년 12월 능산리 고분군과 사비 도성의 나성 사이에 있는 절터를 발굴하다가 공방 터의 물웅덩이(수조) 진흙 속에서 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나왔다. 백제 멸망 때 누군가 급히 숨긴 것으로 본다. 이 절은 위덕왕이 아버지 성왕의 명복을 빌려고 왕릉 곁에 세운 절(능사)로, 같은 절터에서 567년(위덕왕 13)이라는 연대를 새긴 창왕명 석조 사리감이 나왔다. 향로의 제작 시기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 사이로 본다.[1]
- 받침 - 한 마리 용이 몸을 틀어 고개를 들고 입으로 향로 몸체를 받친다. 용은 물속 세계와 음(陰)을 나타낸다.
- 몸체 - 활짝 핀 연꽃 모양이다. 연잎마다 신선과 물고기·물새 같은 동물을 새겼다. 연꽃에서 만물이 태어난다는 연화화생 사상을 담았다.
- 뚜껑 - 신선이 산다는 바다 위의 산 박산(봉래산)을 여러 겹의 봉우리로 표현했다. 봉우리 사이에 신선·동물·나무·폭포·시냇물이 있고, 다섯 악사가 완함·종적·배소·거문고·북을 연주한다. 향 연기가 빠져나오는 구멍을 봉우리 뒤에 숨겼다.
- 꼭대기 - 날개를 펴고 여의주를 문 봉황이 서 있다. 봉황은 양(陽)을 나타내며, 봉황을 바라보는 다섯 마리 원앙이 있다.
용과 봉황, 신선의 산은 도교의 신선 사상을, 연꽃은 불교를 보여 주어 백제 사람들의 종교·사상이 함께 녹아 있다. 중국 한대 이래의 박산 향로 전통을 따랐지만, 산과 인물·동물을 훨씬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일명 금동 용봉 봉래산 향로라고도 한다.[1]
| 문화유산 | 나라 | 특징 |
|---|---|---|
| 백제 금동 대향로 | 백제 | 용 받침·연꽃 몸체·산 모양 뚜껑·봉황, 능산리 절터 출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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