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간섭
IT 위키
더 많은 작업
삼국 간섭(三國干涉, 1895)은 청일 전쟁 뒤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일본이 랴오둥 반도를 차지하자 러시아가 프랑스·독일과 함께 이를 청에 돌려주라고 압박해 일본이 받아들인 사건으로, 조선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 열강의 중국 분할 - 이후 러시아는 랴오둥 반도 남부, 영국은 웨이하이웨이, 독일은 자오저우만 일대를 조차했다.
- 러일 대립 - 일본은 러시아를 장래의 적으로 보고 군비를 늘려 러일 전쟁에 대비했다.[2]
- 조선 정국 - 일본의 위신이 떨어지자 고종과 왕후 민씨는 러시아에 기대어 일본을 견제했다. 친러파가 힘을 얻고 박영효가 쫓겨났으며, 1895년 8월 친러파와 민씨 세력 중심의 제3차 김홍집 내각이 들어섰다. 일본은 강경파 미우라 고로를 공사로 보냈고, 그해 10월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이어 1896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는 아관 파천으로 이어졌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