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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간섭(三國干涉, 1895)은 청일 전쟁 뒤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일본이 랴오둥 반도를 차지하자 러시아가 프랑스·독일과 함께 이를 청에 돌려주라고 압박해 일본이 받아들인 사건으로, 조선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1895년 4월 23일, 시모노세키 조약이 조인된 지 6일 만에 러시아·프랑스·독일 세 나라 공사가 일본 정부에 각서를 건넸다. 일본이 랴오둥 반도를 가지면 청의 수도를 위협하고 조선의 독립을 유명무실하게 하여 동양 평화를 해친다는 이유였다. 러시아는 1891년 시베리아 철도 건설을 시작해 동쪽으로 세력을 넓히려 했고, 프랑스는 러시아와의 동맹 때문에, 독일은 러시아의 관심을 극동으로 돌리려고 함께했다. 영국과 미국은 중립을 지켰다.[1]

군사력이 모자란 일본은 결국 랴오둥 반도를 포기했다. 반환 회답을 보낸 날을 『신편 한국사』는 5월 5일로, 백과사전은 5월 10일로 적는다. 1895년 11월 8일 랴오둥 반환 조약을 맺고, 대신 청에게서 배상금 3,000만 냥을 받았다.[1][2]

  • 열강의 중국 분할 - 이후 러시아는 랴오둥 반도 남부, 영국은 웨이하이웨이, 독일은 자오저우만 일대를 조차했다.
  • 러일 대립 - 일본은 러시아를 장래의 적으로 보고 군비를 늘려 러일 전쟁에 대비했다.[2]
  • 조선 정국 - 일본의 위신이 떨어지자 고종과 왕후 민씨는 러시아에 기대어 일본을 견제했다. 친러파가 힘을 얻고 박영효가 쫓겨났으며, 1895년 8월 친러파와 민씨 세력 중심의 제3차 김홍집 내각이 들어섰다. 일본은 강경파 미우라 고로를 공사로 보냈고, 그해 10월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이어 1896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는 아관 파천으로 이어졌다.[1]
  1. ↑ 1.0 1.1 1.2 1) 삼국간섭과 일본의 대조선 정책, 『신편 한국사』 41,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
  2. ↑ 2.0 2.1 청일전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