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사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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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乙未事變, 1895)은 1895년 10월 8일(음력 8월 20일) 새벽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지휘한 일본군과 낭인들이 경복궁에 들어가 왕후 민씨(명성황후)를 살해한 사건이다.
청일 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1895년 4월 랴오둥반도를 얻었으나 러시아·프랑스·독일의 삼국 간섭으로 돌려주었다. 일본의 힘이 꺾인 것을 본 고종과 왕후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 했고(인아거일), 친일 세력이 밀려났다. 일본은 그 중심에 왕후가 있다고 보고 제거를 꾸몄다.[1]
- 주도 - 새로 부임한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계획했다. 서울 주둔 일본군 수비대가 무력을 맡고, 공사관원·영사 경찰·기자·낭인이 행동대가 되었다. 일본 교관이 훈련한 훈련대 일부도 동원되었다.
- 살해 - 경복궁 안 건청궁에 침입해 왕후를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웠다.
- 처리 - 일본은 국제 여론에 밀려 관련자를 본국으로 불러 재판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모두 풀어 주었다.
- 친일 내각과 을미개혁 - 김홍집 내각이 다시 들어서 태양력 사용, 건양 연호, 단발령 등 을미개혁을 추진했다.
- 을미의병 - 왕후 시해와 단발령에 분노한 유생들이 의병을 일으켰다. 한말 최초의 대규모 항일 의병이다(항일 의병 운동).
- 춘생문 사건(1895.11) - 친미·친러파 관료와 시위대 일부가 고종을 궁 밖으로 옮기려다 실패했다.
- 아관파천(1896.2) - 고종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 친일 내각이 무너지고 단발령이 철회되었으며, 고종은 의병에게 해산을 권하는 조칙을 내렸다.
- 대한 제국 선포 뒤 국장 - 1897년 고종은 황제로 즉위하고 왕후를 명성황후로 추존해 장례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