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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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 전쟁(淸日戰爭, 1894~1895)은 동학 농민 운동을 계기로 조선에 군대를 보낸 청과 일본이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벌인 전쟁으로, 일본이 이겨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고 조선에서 청의 영향력을 몰아냈다.
- 풍도 해전과 성환 전투(1894.7) - 일본 해군이 풍도 앞바다에서 청 함대를 격파하고, 육군이 충청도 성환·아산의 청군을 물리쳤다.
- 평양 전투(1894.9) - 일본군이 평양의 청군을 크게 이겨 조선 땅에서 청군을 몰아냈다. 이어 황해 해전에서 청의 북양 함대가 큰 타격을 입었다.
- 랴오둥과 웨이하이웨이(1894.10~1895.2) - 일본군이 압록강을 건너 랴오둥 반도의 뤼순을 점령하고, 산둥반도 웨이하이웨이에서 북양 함대를 무너뜨렸다.
- 조선 국내 - 일본의 간섭 아래 군국기무처가 설치되어 갑오개혁이 추진되었다.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과 내정 간섭에 반발한 동학 농민군이 1894년 가을 다시 일어났다가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관군에 패했다.
- 시모노세키 조약(1895.4) - 청은 조선이 완전한 자주 독립국임을 인정해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하고, 랴오둥 반도·타이완·펑후 제도를 일본에 넘기고 배상금을 물기로 했다.
- 삼국 간섭(1895.4) - 일본의 대륙 진출을 경계한 러시아가 프랑스·독일과 함께 일본에 랴오둥 반도를 청에 돌려주라고 압박했다. 일본은 이를 받아들였다.[1]
- 조선에 미친 영향 - 일본의 힘이 꺾인 것을 본 고종과 왕후 민씨는 러시아에 기대어 일본을 견제했다(친러 정책). 이에 일본은 1895년 10월 을미사변을 일으켰고, 이듬해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는 아관파천이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