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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 전쟁(淸日戰爭, 1894~1895)은 동학 농민 운동을 계기로 조선에 군대를 보낸 청과 일본이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벌인 전쟁으로, 일본이 이겨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고 조선에서 청의 영향력을 몰아냈다.

평양 전투를 그린 일본 판화(미즈노 도시카타, 1894)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자 조선 정부는 청에 군대를 요청했다. 청군이 아산만에 들어오자 일본도 1885년 톈진 조약의 상호 통보 조항을 내세워 인천에 군대를 상륙시켰다. 농민군이 전주 화약을 맺고 물러난 뒤 조선은 두 나라 군대의 철수를 요구했으나, 일본은 조선 내정 개혁을 핑계로 버텼다. 1894년 7월 23일(양력) 일본군은 경복궁을 점령하고 친일 내각을 세운 뒤, 이틀 뒤 아산만 풍도 앞바다에서 청 함대를 기습해 전쟁을 시작했다.[1]

  • 풍도 해전과 성환 전투(1894.7) - 일본 해군이 풍도 앞바다에서 청 함대를 격파하고, 육군이 충청도 성환·아산의 청군을 물리쳤다.
  • 평양 전투(1894.9) - 일본군이 평양의 청군을 크게 이겨 조선 땅에서 청군을 몰아냈다. 이어 황해 해전에서 청의 북양 함대가 큰 타격을 입었다.
  • 랴오둥과 웨이하이웨이(1894.10~1895.2) - 일본군이 압록강을 건너 랴오둥 반도의 뤼순을 점령하고, 산둥반도 웨이하이웨이에서 북양 함대를 무너뜨렸다.
  • 조선 국내 - 일본의 간섭 아래 군국기무처가 설치되어 갑오개혁이 추진되었다.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과 내정 간섭에 반발한 동학 농민군이 1894년 가을 다시 일어났다가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관군에 패했다.

시모노세키 조약과 삼국 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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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모노세키 조약(1895.4) - 청은 조선이 완전한 자주 독립국임을 인정해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하고, 랴오둥 반도·타이완·펑후 제도를 일본에 넘기고 배상금을 물기로 했다.
  • 삼국 간섭(1895.4) - 일본의 대륙 진출을 경계한 러시아가 프랑스·독일과 함께 일본에 랴오둥 반도를 청에 돌려주라고 압박했다. 일본은 이를 받아들였다.[1]
  • 조선에 미친 영향 - 일본의 힘이 꺾인 것을 본 고종과 왕후 민씨는 러시아에 기대어 일본을 견제했다(친러 정책). 이에 일본은 1895년 10월 을미사변을 일으켰고, 이듬해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는 아관파천이 이어졌다.

근대 동아시아의 전쟁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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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시기 계기 결과
청일 전쟁 1894~1895 동학 농민 운동, 청·일 군대 파병 시모노세키 조약, 삼국 간섭, 청의 종주권 소멸
러일 전쟁 1904~1905 한반도·만주를 둘러싼 러·일 대립, 용암포 사건 포츠머스 조약, 을사늑약
사건과 혼동 주의 1885 갑신정변 뒤 청·일 대립 톈진 조약(전쟁 아님), 같은 해 영국의 거문도 사건
  1. ↑ 1.0 1.1 청일전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