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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歲寒圖, 1844)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중에 제자인 역관 이상적의 변치 않는 의리에 답하여 그린 수묵 문인화로, 조선 후기 문인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며 국보이다.

김정희는 안동 김씨 세력과의 다툼에 휘말려 1840년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집 둘레에 울타리를 쳐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위리안치의 처지가 되었다. 역관 이상적은 연경(베이징)에 갈 때마다 구하기 어려운 책을 구해 제주의 스승에게 보냈다. 김정희는 1844년(헌종 10) 『논어』의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는 구절을 빌려 권세가 사라진 뒤에도 변하지 않은 제자의 마음을 그림으로 그려 주었다.[1][2]

그림과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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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 둥근 창이 난 허름한 집 한 채 좌우로 늙은 나무 네 그루를 두고 나머지는 여백으로 남겼다. 물기가 적은 마른 붓과 먹만으로 그려, 글씨와 그림이 하나가 되는 문인화의 경지를 보여 준다. 나무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소나무와 잣나무'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소나무와 측백나무'로 설명한다.
  • 글 - 오른쪽에 '세한도'라는 제목과 "우선(이상적의 호)은 감상하게. 완당"이라는 글을 쓰고, 왼쪽에 그림을 그린 까닭을 적은 발문을 붙였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의 '장무상망(長毋相忘)' 인장도 찍혀 있다.
  • 감상글 - 이상적은 이듬해 베이징에 가져가 청나라 문인 16명의 감상글을 받았고, 뒤에 김준학과 오세창·이시영·정인보 등의 글이 더해져 지금은 길이 약 14.7m의 두루마리로 전한다.[2]

이상적 이후 여러 사람을 거쳐 일제 강점기에 경성 제국 대학 교수였던 일본인 학자 후지쓰카 지카시의 손에 들어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1944년 서예가 손재형이 일본으로 찾아가 두 달 동안 설득한 끝에 되찾아 왔다. 그 뒤 개인 소장으로 전해지다가 2020년 손창근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2]

비슷한 작품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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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화가 특징
세한도 김정희(19세기) 제주 유배 중 제자에게 준 문인화, 소나무와 측백나무(잣나무)
인왕제색도·금강전도 정선(18세기) 우리 산천을 그린 진경산수화 (→ 조선의 회화)
몽유도원도 안견(15세기) 안평 대군의 꿈을 그린 산수화
  1. ↑ 김정희 필 세한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2.0 2.1 2.2 세한도 - 끝나지 않는 감동, 국립중앙박물관,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