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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회화는 조선 시대(1392~1910)에 도화서 화원과 문인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이르는 말로, 전기의 안견 「몽유도원도」에서 후기의 진경산수화·풍속화, 말기의 문인화로 흐름이 이어졌다.

김홍도의 풍속화 「씨름」

조선의 그림은 나라의 그림을 맡은 관청인 도화서의 화원과, 글과 그림을 함께 즐긴 사대부 문인 화가가 이끌었다. 전기에는 중국 화풍을 받아들이면서도 독자적인 산수화를 그렸다. 17세기 이후 양난을 겪고 사회와 경제가 바뀌면서, 18세기에는 우리 산천을 직접 보고 그린 진경산수화와 서민의 삶을 담은 풍속화가 크게 발달했다. 19세기에는 김정희를 중심으로 마음속 뜻을 드러내는 문인화가 다시 힘을 얻었다.[1]

  • 안견 「몽유도원도」(1447) -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 대군이 꿈에서 본 도원(복숭아꽃 핀 이상향)을 듣고 화원 안견이 사흘 만에 그렸다. 현실 세계에서 꿈속 도원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펼쳤다. 안평 대군의 발문과 신숙주·박팽년·성삼문 등 당대 문사 20여 명의 찬문이 함께 붙어 있다. 지금은 일본 덴리 대학에 있다.
  • 강희안 「고사관수도」 - 선비가 바위에 엎드려 물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린 문인화이다.
  • 16세기 - 사군자와 함께 이정의 대나무, 어몽룡의 매화, 신사임당의 풀벌레 그림(초충도)이 유명했다.
  • 정선과 진경산수화 - 18세기 정선은 중국 그림을 본뜨던 관습에서 벗어나 우리 산천을 직접 보고 그렸다. 「인왕제색도」(비 갠 뒤 인왕산), 「금강전도」가 대표작이다.
  • 김홍도 - 도화서 화원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씨름」·「서당」·「무동」 등 서민의 일상을 소탈하고 익살스럽게 그린 풍속화로 유명하며, 산수화·신선도·화조화에도 뛰어났다.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 일대를 그리기도 했다.[2]
  • 신윤복 - 양반의 풍류와 남녀의 애정, 기녀를 세련된 선과 화려한 색으로 그렸다. 『혜원전신첩』에 실린 「월하정인」(달빛 아래 담장 옆의 두 남녀), 「단오풍정」 등이 있고, 「미인도」도 그의 그림이다.[3]
  • 김득신 - 김홍도의 화풍을 이은 화원이다.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자 주인 부부가 허둥대는 장면을 그린 「파적도」(야묘도추)가 유명하다.
  • 민화 - 이름 없는 화가들이 까치와 호랑이, 십장생, 문자도 등을 그려 서민의 소망을 담았다.
  • 김정희 - 제주 유배 중에 「세한도」를 그렸고, 자기 서예 필법으로 난을 친 「불이선란도」를 남겼다(→ 김정희).
  • 전기 「매화초옥도」 - 김정희의 영향을 받은 중인 화가 전기가 눈처럼 흰 매화가 가득한 산속의 초가와 다리를 건너 벗을 찾아가는 선비를 그렸다.
  • 장승업 - 화원 출신으로 힘찬 필치의 산수·인물·화조화를 남겨 안견·김홍도와 함께 조선의 3대 화가로 불리기도 한다.

화가와 작품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작품 화가 시기
「몽유도원도」 안견 조선 전기(세종)
「고사관수도」 강희안 조선 전기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정선 조선 후기(영조)
「씨름」, 「서당」, 「무동」 김홍도 조선 후기(정조)
「월하정인」, 「단오풍정」, 「미인도」 신윤복 조선 후기
「파적도」 김득신 조선 후기
「세한도」, 「불이선란도」 김정희 조선 말기(헌종)
「매화초옥도」 전기 조선 말기
  1. ↑ 몽유도원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김홍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3. ↑ 신윤복,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