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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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조선 후기 금석학과 고증학을 이끌고 추사체라는 독창적인 서체를 완성했으며, 제주 유배 중에 「세한도」를 그린 문신·학자·서화가이다.
- 금석학 - 옛 비석과 금속에 새긴 글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1816년 북한산 비봉의 비석을 조사해 그것이 무학 대사의 비가 아니라 신라 진흥왕 순수비임을 밝혔고, 황초령비도 고증했다. 그 연구를 『금석과안록』(예당금석과안록)에 남겼다.
- 고증학·경학 - 『실사구시설』에서 청 학자들의 학설을 자기 경험과 사유로 소화해 실증을 중시하는 학문 태도를 밝혔다.
- 불교 - 초의 선사·백파 선사 등 승려와 깊이 사귀며 논쟁했다. 세상을 떠나던 해 봉은사에 남긴 현판 「판전」이 유명하다.
- 추사체 - 역대 서법을 두루 익힌 뒤 특히 옛 예서를 깊이 연구해, 굵고 가는 획과 파격적인 짜임을 지닌 자기만의 글씨를 만들었다. 제주 유배기를 거치며 완성되었다.
- 「세한도」(국보) - 1844년 제주 유배 중에 그렸다. 귀양 간 스승을 잊지 않고 청에서 귀한 책을 구해 보내 준 제자인 역관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담아 그려 준 그림이다. 허름한 집 한 채와 소나무·잣나무를 그리고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는 『논어』 구절을 제목으로 삼았다. 사실 묘사보다 마음속 뜻을 드러내는 문인화의 대표작이다.
- 「불이선란도」 - 난초를 그리고 그 둘레에 글을 빽빽이 써 넣은 묵란화이다. 자기 서예 필법으로 난을 친 그림으로, 그림 속 글과 여러 도장을 통해 그의 예술관과 소장자의 변동을 알 수 있다.
- 제주 유배(1840~1848) - 윤상도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 대정현에 위리안치되었다. 9년 가까운 유배 생활 동안 학문과 글씨가 더욱 깊어져 추사체와 「세한도」가 이때 나왔다.
- 북청 유배(1851~1852) - 다시 정치 다툼에 휘말려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 풀려난 뒤 과천에서 지내다가 1856년 세상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