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복강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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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복강녕(壽福康寧)은 오래 살고 복을 누리며 건강하고 평안함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사람이 바라는 복을 네 글자로 모은 축원의 말이다. 생일·회갑 같은 잔치의 축하 글, 편지의 안부, 묘비문에서 고인의 일생을 기리는 말로 두루 쓰였고, 조선 시대에는 백자 같은 생활용품에 써 넣는 길상(吉祥) 문구로도 쓰였다(여담 참고).
이 말의 뿌리는 《서경(書經)》 〈홍범(洪範)〉의 ‘오복(五福)’이다. 기자(箕子)가 주나라 무왕에게 일러 준 아홉 가지 큰 법 가운데 마지막이 오복과 육극(六極)인데, 오복은 다음과 같다.[2]
五福:一曰壽,二曰富,三曰康寧,四曰攸好德,五曰考終命。
“다섯 가지 복은 첫째 오래 사는 것(壽), 둘째 넉넉한 것(富), 셋째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康寧), 넷째 덕을 좋아하는 것(攸好德), 다섯째 천명을 다하고 죽는 것(考終命)이다.”
수복강녕은 이 가운데 앞의 세 가지인 ‘수(壽)·부(富)·강녕(康寧)’을 따서, 둘째 ‘富’를 소리가 같은 ‘福’으로 바꾼 형태이다. 홍범의 원래 순서를 그대로 살린 ‘수부강녕(壽富康寧)’과 앞뒤를 바꾼 ‘복수강녕(福壽康寧)’도 있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壽富康寧’을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쓰는 축하 말로, ‘福壽康寧’을 축원하는 말로 싣고 명나라 희곡 《금작기(金雀記)》의 “惟願取福壽康寧”을 용례로 든다.[3][4]
‘壽福康寧’이라는 형태는 명나라 문헌에서 보인다. 방효유(方孝孺)는 세상의 운수를 논한 글에서 “천명에서 나온 것 가운데 어찌 수복강녕한 사람이 없겠는가(其命之出乎天者豈無壽福康寧者乎)”라고 했다.[5] 왕수인(王守仁)은 왕오(王鏊)의 일생을 기리며 “이른바 수복강녕하고 덕을 좋아하며 천명을 다하고 죽는다는 것에 공은 부끄러움이 없다(所謂壽福康寧,攸好德而考終命,公殆無愧爾矣)”고 하여, 홍범의 오복을 그대로 풀어 썼다.[6]
조선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썼다. 조경(趙絅)은 이전(李㙉)의 묘갈명에서 “수복강녕하고 덕을 좋아하며 천명을 다하고 죽은 것에 공이 무엇을 양보하겠는가(壽福康寧攸好德考終命者。公何讓焉)”라고 했다.[7]
- 1606년(선조 39), 명나라 사신을 맞이한 원접사 유근(柳根)은 선조에게 사신의 글씨 솜씨를 설명하며 “의주에 와서 ‘壽福康寧’ 네 자를 써서 신의 행차에 보냈는데 대체로 재주가 있는 사람입니다(至義州,寫壽福康寧四字,送于臣行,大槪有才者也)”라고 했다. 유근은 이 사신을 중국 사람들이 글 잘하는 사람으로 첫손에 꼽는 ‘주 한림(朱翰林)’이라 했는데, 그해의 정사 주지번(朱之蕃)을 가리킨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서 ‘壽福康寧’이 나오는 것은 이 한 건뿐이다.[8]
-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조선 시대 〈「수복강녕」이 쓰인 백자 청화 매화 난초무늬 항아리〉는 윗단 네 곳에 원을 그리고 그 안에 壽·福·康·寧을 한 자씩 써 넣었다.[9]
- 할머니의 팔순 잔치에 자손들은 수복강녕을 빌며 큰절을 올렸다.
- 연하장 끝에 “새해에도 수복강녕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수복강녕”,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8%98%EB%B3%B5%EA%B0%95%EB%85%95, 확인날짜=2026-10-03.
- ↑ 《서경(書經)》 〈주서(周書)·홍범(洪範)〉.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壽富康寧”,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27409, 확인날짜=2026-10-03.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福壽康寧”,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7821, 확인날짜=2026-10-03.
- ↑ 방효유(方孝孺), 《손지재집(遜志齋集)》 권6.
- ↑ 왕수인(王守仁), 《왕양명집(王陽明集)》 권25.
- ↑ 조경(趙絅), 〈묘갈명(墓碣銘)〉, 이전(李㙉), 《월간집(月澗集)》,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737A_0060_000_0010,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202권, 선조 39년 8월 6일 임인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908006_002, 확인날짜=2026-10-03.
- ↑ 국립중앙박물관, “「수복강녕」이 쓰인 백자 청화 매화 난초무늬 항아리”(동원465),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1758,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