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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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천지(暗黑天地)는 하늘과 땅이 어둡고 캄캄한 상태를 뜻하는 한자성어이다.[1] 비유적으로는 부도덕한 행위나 범죄가 마구 일어나는 암담하고 불안한 사회를 이른다.[2]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암흑(暗黑)’에 ‘천지(天地)’를 붙여 ‘온 세상이 캄캄함’을 나타낸 근대 한자어이다. 중국 고전과 불전,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 원문, 한국고전종합DB의 문집 원문에서는 이 네 글자를 찾을 수 없다. 옛 한문에서는 글자 순서를 바꾼 ‘天地暗黑’, ‘天地黑暗’ 같은 서술형 구절로 같은 장면을 그렸다.
‘암흑(暗黑)’ 자체는 오래된 말로, 《일본국어대사전》은 중국 문헌으로 한나라 《한시외전(韓詩外傳)》을 들고, 비유적으로 ‘어지럽고 희망이 없는 시대’를 뜻하는 쓰임은 라이 산요(賴山陽)의 《일본외사(日本外史)》(1827)를 이른 예로 든다.[4]
네 글자 형태는 메이지 말의 일본 문장에 보인다. 모리 오가이(森鷗外)가 번역한 안데르센의 《즉흥시인》(1902년 단행본)에는 “나는 무서운 암흑천지로 통하는 여러 갈래 길을 바라보며(われはおそろしき暗黑天地に通ずる幾條の道を望みて)”라는 구절이 있다.[5]
한국어 신문에서는 1930년대 《동아일보》 기사 제목에 자주 보인다. 1930년 스페인 총파업으로 수도의 수도·전기·교통이 멈추자 “수부는 암흑천지화(首府는 暗黑天地化)”라고 했고,[6] 1933년 경성의 등화관제 예행연습 때는 “불야성의 만호장안, 신호 일성에 암흑천지!”라는 제목을 달았다.[7] 같은 시기 잡지에서는 “보수 사대의 암흑천지”처럼 낡은 시대를 비판하는 비유로도 썼다.[8]
- 데이터센터 전원이 한꺼번에 나가자 서버실은 순식간에 암흑천지가 되었다.
- 낙뢰로 변전소가 멈추면서 도시 전체가 암흑천지로 변했다.
- 그는 언론이 통제되던 시절을 진실이 보이지 않는 암흑천지였다고 회고했다.
-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천지개벽 이야기를 듣고 늘 걱정하던 양근의 황생(黃生)이라는 선비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비바람이 몰아치고 뒷산이 무너지자 밖으로 뛰쳐나간 황생은 “천지가 캄캄하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見天地暗黑,不卞咫尺)” 것을 보고 개벽이 온 줄 알았다. 그는 자신이 살아남았으니 옛 천황씨처럼 새 세상의 천황씨가 될 것이며, 글까지 알므로 옛 천황씨보다 낫다고 은근히 기뻐하였다. 날이 밝자 천지는 그대로이고 자기 집만 산사태에 묻혀 있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천황씨(天黃氏)’라 부르며 놀렸다고 한다.[9]
- 《조선왕조실록》 국역문에는 ‘암흑천지’가 3건 나오지만 원문에는 이 말이 없다. 1730년(영조 6) 상소의 “삼백 년 예의의 나라를 긴 밤의 세상으로 만들었다(便作長夜乾坤)”를 국역문은 “3백 년 예의(禮義)의 나라를 암흑천지로 만들어”로 옮겼다.[10]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암흑천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5%94%ED%9D%91%EC%B2%9C%EC%A7%80, 확인날짜=2026-10-11.
-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암흑천지”,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query=%EC%95%94%ED%9D%91%EC%B2%9C%EC%A7%80, 확인날짜=2026-10-11.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天昏地暗”,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8290, 확인날짜=2026-10-11.
- ↑ 《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暗黒”,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6%9A%97%E9%BB%92, 확인날짜=2026-10-11.
- ↑ 안데르센 작, 모리 오가이(森鷗外) 역, 《即興詩人》, 1902,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https://dl.ndl.go.jp/pid/897037, 확인날짜=2026-10-11.
- ↑ “王과 政府 倒壞絶叫 西勞働者의 大示威 水道 電氣交通 新聞 모다 停止, 首府는 暗黑天地化”, 《동아일보》, 1930-11-18,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s://db.history.go.kr/id/npda_1930_11_18_v0001_0060, 확인날짜=2026-10-11.
- ↑ “不夜城의 萬戶長安 信號一聲에 暗黑天地!”, 《동아일보》, 1933-06-04,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s://db.history.go.kr/id/npda_1933_06_04_w0002_0360, 확인날짜=2026-10-11.
- ↑ 김진구(金振九), 〈손일선과 원세개의 지하 면담기〉, 《별건곤》 제16·17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s://db.history.go.kr/id/ma_015_0150_0040, 확인날짜=2026-10-11.
- ↑ 이수광(李睟光), 《지봉유설(芝峰類說)》 권16.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28권, 영조 6년 11월 2일 정묘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ua_10611002_001, 확인날짜=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