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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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고(養賢庫)는 1119년(예종 14) 고려가 국자감 학생을 뒷바라지하려고 국학에 둔 장학 재단이다.
- 관리 - 처음에는 판관 2명이 맡았고, 1243년(고종 30) 4명으로 늘려 2명은 토지가 있는 곳에 가서 세를 거두고 2명은 창고를 지키게 했다.
- 쇠퇴 - 고려 후기 국학이 쇠퇴하면서 양현고의 재원도 바닥났다.
- 섬학전 - 충렬왕 때 안향이 관리들에게서 거둔 섬학전을 양현고에 넣어 교육을 되살리려 했다. 1308년(충렬왕 34)에는 왕이 은 50근을 내리기도 했다.
| 시책 | 때 |
|---|---|
| 국자감 설치 | 992년 성종 |
| 7재 설치(강예재 포함) | 1109년 예종 |
| 양현고 설치 | 1119년 예종 |
| 경사 6학 정비 | 인종 |
| 섬학전 설치 | 충렬왕(안향 건의) |
- ↑ 양현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 ↑ 관학의 진흥 - 칠재와 양현고 설치, 우리역사넷(사료로 본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