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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고(養賢庫)는 1119년(예종 14) 고려가 국자감 학생을 뒷바라지하려고 국학에 둔 장학 재단이다.

예종은 사학 12도에 밀린 관학을 되살리려고 1109년 국자감에 7재를 두었다. 이어 1119년 7월 국학에 양현고를 세워 선비를 기르는 재원으로 삼았다. 양현고는 국자감에 딸린 토지에서 세를 거두어 학생의 식량과 학용품 등 교육 비용을 댔다.[1][2]

  • 관리 - 처음에는 판관 2명이 맡았고, 1243년(고종 30) 4명으로 늘려 2명은 토지가 있는 곳에 가서 세를 거두고 2명은 창고를 지키게 했다.
  • 쇠퇴 - 고려 후기 국학이 쇠퇴하면서 양현고의 재원도 바닥났다.
  • 섬학전 - 충렬왕 때 안향이 관리들에게서 거둔 섬학전을 양현고에 넣어 교육을 되살리려 했다. 1308년(충렬왕 34)에는 왕이 은 50근을 내리기도 했다.

고려의 관학 진흥책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시책 때
국자감 설치 992년 성종
7재 설치(강예재 포함) 1109년 예종
양현고 설치 1119년 예종
경사 6학 정비 인종
섬학전 설치 충렬왕(안향 건의)
  1. ↑ 양현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관학의 진흥 - 칠재와 양현고 설치, 우리역사넷(사료로 본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