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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재(七齋)는 1109년(예종 4) 고려가 관학을 되살리려고 국자감 안에 둔 7개의 전문 강좌로, 유학 6재와 무학 1재(강예재)로 이루어졌다.

문종 무렵부터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한 사학 12도가 번성하면서 국자감이 위축되었다. 예종은 1107년 한 차례 국학 개혁을 꾀했으나 대신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고, 1109년 7월 국학에 7재를 두어 제도로 확정했다. 유학재에 70명, 무학재에 8명을 뽑아 각 재에 나누어 머물게 했다.[1][2]

  • 유학 6재 - 여택재(주역), 대빙재(상서), 경덕재(모시), 구인재(주례), 복응재(대례), 양정재(춘추).
  • 무학재 - 강예재. 무예를 가르쳤다. 여진과의 긴장 속에 장수를 기르려는 뜻이 담겼다.
  • 성종 이래 문신만 기르던 국자감 교육에 무학을 더해 장수와 재상을 함께 기르려 했다.
  • 1119년 장학 재단인 양현고를 두어 7재를 재정으로 뒷받침했다.
  • 금에 사대하게 되면서 무학의 필요성이 줄었고, 강예재는 1133년(인종 11) 폐지되었다.
  1. ↑ 칠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고려사』 권74 지28 선거2 학교, 예종 4년 7월조,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