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필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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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필종부(女必從夫)는 아내는 반드시 남편을 따라야 한다는 뜻의 한자성어이다.[1]
유교의 가족 윤리에서 여자가 지켜야 할 도리로 내세우던 말이다. 여자는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삼종지도(三從之道)’ 가운데 ‘결혼해서는 남편을 따른다’는 부분을 따로 떼어 강조한 말이라 할 수 있다.[2]
오늘날에는 남녀가 평등한 부부 관계와 맞지 않는 옛 관념으로 여겨져, 주로 전통 가족 윤리를 설명하거나 그런 관념을 비판할 때 쓴다.
네 글자 형태는 조선 문헌에서 쓰인 말로, 중국어에서는 흔히 쓰지 않는다. 중국어에서는 같은 생각을 흔히 ‘삼종사덕(三從四德)’이라는 말로 나타낸다.
생각의 출전은 《의례(儀禮)》 〈상복(喪服)〉의 전(傳)이다. 시집간 딸이 친정 부모의 상에 왜 삼년상이 아니라 일년상을 입는지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婦人有三從之義,無專用之道,故未嫁從父,既嫁從夫,夫死從子。故父者,子之天也;夫者,妻之天也。
“부인에게는 세 가지를 따르는 도리가 있고 제 마음대로 하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며,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른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자식의 하늘이고, 남편은 아내의 하늘이다.”
이 대목은 상례에서 ‘하늘을 둘로 섬기지 않는다’는 원칙, 곧 여자는 시집가면 남편을 위해 삼년상(참최)을 입으므로 친정아버지를 위해서는 한 등급 낮춘다는 복제를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공자가어(孔子家語)》 〈본명해(本命解)〉에도 여자에게는 “마음대로 결정하는 도리가 없고 세 가지를 따르는 도리가 있다(無專制之義,而有三從之道)”는 말이 있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은 삼종사덕(三從四德)의 ‘삼종’이 《의례》 〈상복〉에서 나왔다고 설명한다.[4]
‘女必從夫’라는 넉 자는 중국 한문 전적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조선 문헌에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6건 나오며 모두 《중종실록》에 있다.
가장 이른 예는 중종 11년(1516) 1월의 기사이다. 시독관 채침(蔡忱)이 석강에서 아뢰기를, 생원 김세업(金世業)의 아내 심씨(沈氏)는 병든 남편을 정성껏 돌보다가 남편이 죽자, 남편이 지은 〈차여생부(嗟予生賦)〉 끝에 “여자는 반드시 남편을 따라야 하니, 남편이 죽으면 오래 살 수 없다(女必從夫,夫死則不可久生)”라고 써 놓고 약을 먹고 죽었다고 하였다. 중종은 “절의에 관계되니 예관으로 하여금 정표하게 하라”고 명했다.[5]
2년 뒤인 중종 13년(1518) 8월에는 최산두(崔山斗)가, 공천(公賤)을 숨긴 죄로 온 가족이 변방으로 옮겨질 처지가 된 동래 사람 이춘무(李春茂)의 아내 송씨가 효녀로 이름난 사람인데 “여필종부이니 효녀라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며 선처를 청했다.[6] 이처럼 조선에서는 이 말이 도덕적 권유를 넘어, 죄인의 아내가 남편의 유배지로 함께 가야 하는 근거로도 쓰였다.
이 말이 가장 인상적으로 쓰인 예는 사육신 박팽년(朴彭年)이 지었다는 시조이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은 세조가 사육신을 신문할 때 김질을 시켜 옥중에 술을 보내 떠보자 박팽년과 이개가 스스로 단가를 지어 답했다는 이야기를 적고, 이어 《추강집》을 인용하여 박팽년이 지은 단가로 다음 노래를 싣는다(국역문).[7]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옥출곤강(玉出崑崗)이라 한들 뫼마다 옥이 나며,
아무리 여필종부(女必從夫)라 한들 임마다 좇을소냐.
“금이 여수(麗水)에서 난다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옥이 곤강(崑崗)에서 난다 한들 산마다 옥이 나겠는가. 아무리 여필종부라 한들 임마다 따르겠는가.” 여자가 남편을 따르는 것이 도리라 해도 아무 남자나 따르지 않듯, 신하도 아무 임금이나 섬기지 않는다는 뜻으로, 여필종부를 뒤집어 충절을 노래한 것이다. 첫 두 구는 《천자문》의 “金生麗水,玉出崑岡”을 빌렸다.[7]
이 노래의 지은이에 대해서는 다른 전승도 있다. 김종수(金鍾秀)의 《몽오집(夢梧集)》에 실린 고려 제주(祭酒) 이공의 묘표에는, 조선 태조 앞에서 이공이 “金生麗水。豈是水水生金。玉出崑岡。豈是山山出玉。女必從夫。又豈是夫夫也皆從”이라는 노래로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8]
- 여필종부라는 말로 아내의 이직 결정을 막으려던 그는 가족들에게 호된 핀잔을 들었다.
- 조선 시대에는 여필종부를 근거로 죄인의 아내도 유배지로 함께 가야 했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여필종부”,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7%AC%ED%95%84%EC%A2%85%EB%B6%80, 확인날짜=2026-09-30.
- ↑ 2.0 2.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삼종지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2%BC%EC%A2%85%EC%A7%80%EB%8F%84, 확인날짜=2026-09-30.
- ↑ 《의례(儀禮)》 〈상복(喪服)〉 전(傳), 《의례주소(儀禮註疏)》 권30.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三從四德”,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71, 확인날짜=2026-09-30.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23권, 중종 11년 1월 27일 기유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1101027_003, 확인날짜=2026-09-30.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34권, 중종 13년 8월 5일 임신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1308005_002, 확인날짜=2026-09-30.
- ↑ 7.0 7.1 이긍익(李肯翊),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제4권 〈단종조 고사본말〉 “정난에 죽은 여러 신하” 박팽년,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BT_1300A_0050_020_0090, 확인날짜=2026-09-30.
- ↑ 김종수(金鍾秀), 〈고려좨주이공묘표(高麗祭酒李公墓表)〉, 《몽오집(夢梧集)》 권6,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dir/node?dataId=ITKC_MO_0556A_0070_030_0030, 확인날짜=2026-09-30.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부창부수”,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B%B6%80%EC%B0%BD%EB%B6%80%EC%88%98, 확인날짜=20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