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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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외인(出嫁外人)은 시집간 딸은 친정 사람이 아니고 남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으로 이르는 말이다.[1]
딸을 시집보내며 “이제 출가외인이니 시댁 식구로 살아라”라고 당부하거나, 결혼한 딸이 친정 일에 나서는 것을 막을 때 쓰던 말이다. 아들이 집안의 대를 잇고 딸은 혼인과 함께 남편의 집안에 속한다고 본 부계 중심 가족 제도를 반영한다. 오늘날에는 상속·제사·종중 등에서 딸을 차별하던 관념을 가리키는 말로 비판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출가(出嫁)’는 처녀가 시집을 감, ‘외인(外人)’은 한집안 식구가 아닌 남을 뜻한다. 중국어와 일본어에서는 이 네 글자를 성어로 쓰지 않는다. 대만 교육부 《성어전》과 일본 코토뱅크에 표제어가 없다.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出嫁外人’이라는 네 글자는 중국 한문 전적과 불교 문헌에서 성어로 쓰인 예가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도 이 네 글자가 이어진 곳은 1506년(연산군 12) 5월 14일 기사 한 곳뿐인데, 궁에서 내보낸 나인이 “바깥사람에게 시집가면(出嫁外人) 궁중의 일을 누설할 폐단이 있다”는 문장이어서 오늘날의 성어와는 짜임이 다르다.[2] 《승정원일기》와 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에서도 성어로 쓰인 예는 찾지 못했다. 한문 전적보다 입말과 한글 문헌에서 굳은 말로 보인다.
생각의 뿌리는 유교 상례에 있다. 《의례(儀禮)》 〈상복(喪服)〉의 전(傳)은 시집간 딸이 친정 부모를 위해 입는 상복을 한 등급 낮추는 까닭을 “부인에게는 세 가지 따름이 있어(婦人有三從之義)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른다(未嫁從父,既嫁從夫)”는 데서 찾았다.[3] 조선에서도 이황(李滉)은 제자의 물음에 “시집간 딸이 친정 부모를 위해 상복을 낮추어 입는 것이 예(出嫁女爲私親降服。禮也)”라고 답했다.[4] 이처럼 예법에서 시집간 딸을 친정과 구별하던 원칙이 생활 속에서 ‘시집간 딸은 남’이라는 말로 굳었다.
이 말이 생긴 까닭을 풀이하는 민담도 전한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평동에 전하는 〈딸은 출가외인〉 이야기에서는, 가난한 집에 시집간 딸이 친정아버지의 묘를 옮길 명당을 보고 몰래 구덩이에 물을 채워 이장을 미루게 한 뒤 그 자리에 시아버지를 묻는다. 그 뒤 딸의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다가 친정아버지의 묘를 제자리로 돌리자 잠잠해졌고, 이 일 때문에 시집간 딸을 출가외인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7] 시집간 딸이 결국 시댁 편을 든다는 생각을 풍수담에 담은 것이다.
- 중국어: 비슷한 생각을 “시집간 딸은 쏟아 버린 물과 같다(嫁出去的女兒,潑出去的水)”라는 속담으로 말한다. 청나라 소설 《홍루몽보(紅樓夢補)》 제14회에 습인(襲人)이 “속담에 시집간 딸은 쏟아 버린 물과 같다고 했다”며 다시 가부(賈府)에 들어갈 수 없다고 탄식하는 대목이 있다.[10] 1998년 6월 12일 대만 사법원(司法院) 대법관 해석 제457호는, 퇴역 군인에게 나누어 준 국유 농장의 주택과 토지를 “딸이 시집가면 무조건 회수하고 아들이 있으면 아들이 잇게 한다”고 정한 행정 규정이 성별과 혼인 여부만으로 여성을 차별해 남녀평등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의 해석 청구서는 해당 규정이 ‘남존여비’와 ‘시집간 딸은 쏟아 버린 물’이라는 낡은 관념에 머물러 있다고 주장했다.[11]
- 삼종(三從)을 말한 “집에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른다(在家從父,出嫁從夫)”는 중국 소설과 희곡에 자주 보이는 구절이다.[12]
- 출가외인이라며 딸에게 부모 부양 의무만 지우고 상속에서는 빼던 관행은 이제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 할머니는 “요즘 세상에 출가외인이 어디 있느냐”며 명절마다 딸 내외를 먼저 불렀다.
- 1965년 정원 감독이 만든 영화 《출가외인》이 있다. 김지미 등이 출연했다.[13]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출가외인”,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B6%9C%EA%B0%80%EC%99%B8%EC%9D%B8,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62권, 연산군 12년 5월 14일 계사 6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ja_11205014_006, 확인날짜=2026-10-03.
- ↑ 《의례(儀禮)》 〈상복(喪服)〉 전(傳).
-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이황(李滉), 《퇴계집(退溪集)》 〈답김이정(答金而精)〉, https://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144A_0280_010_0140, 확인날짜=2026-10-03.
- ↑ 박영희, 〈17세기 소설에 나타난 시집간 딸의 친정 살리기와 ‘출가외인’ 담론〉,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13,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6,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172236, 확인날짜=2026-10-03.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근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A%B7%BC%EC%B9%9C, 확인날짜=2026-10-03.
-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광주문화대전, “딸은 출가외인”, https://www.grandculture.net/gwangju/toc/GC60005814, 확인날짜=2026-10-03.
- ↑ 대법원 2005. 7. 21. 선고 2002다1178 전원합의체 판결.
- ↑ “‘딸들의 반란’ 성공했다… 大法 ‘여성도 종중원 자격’”, 《한국일보》, 2005-07-21,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200507210056445594, 확인날짜=2026-10-03.
- ↑ 《홍루몽보(紅樓夢補)》 제14회.
- ↑ 대만 사법원(司法院), 석자(釋字) 제457호 해석, 1998-06-12, 해석문·이유서 및 청구서.
- ↑ 《포공안(包公案)》 제63회.
-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출가외인「002」”, https://open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focus_name=query&query=%EC%B6%9C%EA%B0%80%EC%99%B8%EC%9D%B8, 확인날짜=2026-10-03.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삼종지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2%BC%EC%A2%85%EC%A7%80%EB%8F%84,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