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종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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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종지도(三從之道)는 예전에 여자가 따라야 한다고 하던 세 가지 도리, 곧 어려서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뒤에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가르침을 이르는 한자성어이다.[1] 줄여서 삼종(三從)이라고도 하며, 삼종지의(三從之義)·삼종지례(三從之禮)·삼종지덕(三從之德)도 같은 말이다.[1]
세 가지를 따른다는 생각은 상례와 혼례를 다룬 유교 경전들에 보인다. 가장 자세한 것은 《의례(儀禮)》 〈상복(喪服)〉의 전(傳)이다. 시집간 딸이 친정아버지의 상에 왜 삼년상이 아닌 일년상을 입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이다.[2]
婦人有三從之義,無專用之道,故未嫁從父,既嫁從夫,夫死從子。故父者,子之天也;夫者,妻之天也。
“부인에게는 세 가지를 따르는 도리가 있고 제 마음대로 하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며,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른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자식의 하늘이고, 남편은 아내의 하늘이다.”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은 혼례를 설명하며 “부인은 사람을 따르는 사람이니, 어려서는 부형을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른다(婦人,從人者也:幼從父兄,嫁從夫,夫死從子)”고 했다.[5]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은공 2년 조의 전문도 “부인은 집에 있을 때는 아버지에게 매이고, 시집가서는 남편에게 매이며, 남편이 죽으면 맏아들을 따른다(婦人在家制於父,既嫁制於夫,夫死從長子)”고 적는다.[6] 한국의 이숙인은 삼종지도의 근거가 《예기》 〈교특생〉과 《의례》 〈상복〉 전에 있으며, 이 문헌들이 전한 때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7]
‘三從之道’라는 네 글자는 《대대례기(大戴禮記)》 〈본명(本命)〉에 나온다.[8]
婦人,伏於人也。是故無專制之義,有三從之道──在家從父,適人從夫,夫死從子,無所敢自遂也。教令不出閨門,事在饋食之閒而正矣。
“부인은 남에게 엎드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제 마음대로 정하는 도리가 없고 세 가지를 따르는 도리가 있으니, 집에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며,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라, 감히 스스로 이루는 일이 없다. 가르침과 명령이 규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일은 음식을 차려 올리는 데서 바르게 된다.”
거의 같은 글이 《공자가어(孔子家語)》 〈본명해(本命解)〉에는 노나라 애공(哀公)의 물음에 공자가 답한 말로 실려 있다. 여기서는 “어려서는 부형을 따르고(幼從父兄)”로 되어 있고, “두 번 시집가는 일이 없다(言無再醮之端)”, “낮에는 뜰에 나가 놀지 않고 밤에 다닐 때는 불을 든다(晝不遊庭,夜行以火)” 같은 구절이 이어진다.[9]
나무위키 등에서는 삼종지도를 《공자가어》에 나오는 말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으나, 같은 네 글자는 그보다 앞선 전한의 《대대례기》 〈본명〉에 이미 있고, 세 가지를 따른다는 내용 자체는 《의례》 〈상복〉 전과 《예기》 〈교특생〉에 나온다. 《공자가어》는 삼국 시대 위나라 왕숙(王肅)이 전한 판본이 통행본이 되었기 때문에, 이 대목을 출전으로 삼아 공자가 직접 한 말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또 표준국어대사전은 삼종지도가 “≪예기≫의 의례(儀禮)에 나오는 말”이라고 풀이하지만, 《의례》는 《예기》의 한 편이 아니라 별개의 경전이다.[1][7]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三從之道가 22건, 三從之義가 16건 보인다.[11] 이른 예로 1406년(태종 6) 대사헌 허응(許應) 등은 시무 7조에서 “부부는 인륜의 근본이므로 부인에게는 삼종의 의리가 있고 다시 시집가는 이치가 없다(婦人有三從之義,無更適之理)”며, 세 번 시집간 양반의 정처는 고려의 법처럼 《자녀안(恣女案)》에 올리자고 청했다.[12] 1429년(세종 11) 유맹문(柳孟聞) 등의 상소에도 “삼종의 도리는 있어도 다른 데로 갈 의리는 없다(有三從之道,無他適之義)”는 말이 나온다.[13] 이런 논의는 재가한 여성의 자손이 벼슬길에 나서지 못하게 한 《경국대전》의 이른바 재가녀자손금고법(改嫁女子孫禁錮法)으로 이어졌다.[7]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따른다는 셋째 조목은 왕실 여성의 정치 참여를 비판하는 근거가 되었다. 1453년(단종 1) 의정부 사인 이예장(李禮長)은 광평대군의 부인이 동래 온천에 여러 달 머무는 것을 두고, 여자에게는 삼종지도가 있는데 남편은 죽고 아들은 어리니 친정아버지가 막았어야 한다고 아뢰었다.[14] 1551년(명종 6) 문정왕후의 뜻에 따라 선교 양종을 다시 세우는 문제로 조정이 들끓자, 사관은 “자전(慈殿)은 대전(大殿)에 대하여 삼종의 도리가 있고 마음대로 정하는 의리는 없다”고 적었다.[15] 1675년(숙종 1)에는 부제학 홍우원(洪宇遠)이 복창군·복평군 형제의 일에 명성왕후가 직접 나선 것을 두고 《주역》 가인괘를 들어 “부인은 안에서 자리를 바르게 하고 바깥일에 관여하지 않으니, 마음대로 정하는 의리가 없고 삼종의 도리가 있다”고 상소했다.[16]
아동 교재에서도 가르쳤다. 박세무(朴世茂)의 《동몽선습(童蒙先習)》 〈부부유별〉 절은 아내가 남편을 업신여기면 “삼종의 도리에 어둡고 칠거의 악이 있게 되어(昧三從之道,有七去之惡)” 집안의 도가 무너진다고 했다.[17] 한편 이이(李珥)가 외할머니 이씨의 행적을 적은 〈이씨감천기(李氏感天記)〉에는, 남편이 함께 서울로 가자고 하자 이씨가 “여자에게는 삼종의 도리가 있으니 명을 어길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외동딸로서 늙고 병든 친정 부모를 두고 떠날 수 없다고 울며 호소하는 대목이 있다. 삼종지도를 인정하면서도 친정 부모에 대한 효를 앞세운 예다.[18]
- 삼종지도를 강요하던 시대에는 여성이 자기 이름으로 재산을 지키기도 어려웠다.
- 할머니는 삼종지도를 들으며 자랐지만, 손녀에게는 하고 싶은 공부를 끝까지 하라고 하셨다.
- ↑ 1.0 1.1 1.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삼종지도”,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82%BC%EC%A2%85%EC%A7%80%EB%8F%84, 확인날짜=2026-10-03.
- ↑ 2.0 2.1 2.2 2.3 2.4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三從四德”,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71, 확인날짜=2026-10-03.
- ↑ 3.0 3.1 3.2 《디지털 다이지센(デジタル大辞泉)》·《정선판 일본국어대사전(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개정신판 세계대백과사전(改訂新版 世界大百科事典)》, “三従”, 코토뱅크, https://kotobank.jp/word/%E4%B8%89%E5%BE%93, 확인날짜=2026-10-03.
- ↑ 《의례(儀禮)》 〈상복(喪服)〉 전(傳).
- ↑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
- ↑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은공(隱公) 2년.
- ↑ 7.0 7.1 7.2 이숙인, “삼종지도(三從之道)”,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6813, 확인날짜=2026-10-03.
- ↑ 8.0 8.1 대덕(戴德), 《대대례기(大戴禮記)》 〈본명(本命)〉.
- ↑ 《공자가어(孔子家語)》 권6 〈본명해(本命解)〉.
- ↑ 위수(魏收), 《위서(魏書)》 권78 〈장보혜전(張普惠傳)〉.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원문 검색 “三從之道”·“三從之義”, https://sillok.history.go.kr/,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11권, 태종 6년 6월 9일 정묘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ca_10606009_003,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45권, 세종 11년 9월 30일 계유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da_11109030_003,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단종실록》 6권, 단종 1년 4월 24일 신해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fa_10104024_003,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명종실록》 11권, 명종 6년 1월 22일 경술 3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ma_10601022_003, 확인날짜=2026-10-03.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3권, 숙종 1년 4월 1일 기축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sa_10104001_001, 확인날짜=2026-10-03.
- ↑ 박세무(朴世茂), 《동몽선습(童蒙先習)》 〈부부유별(夫婦有別)〉.
- ↑ 이이(李珥), 〈이씨감천기(李氏感天記)〉, 《율곡전서(栗谷全書)》,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10-03.
- ↑ 참고: 김은정, “[촉석루] 신(新)삼종지도”, 경남신문,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228465, 확인날짜=2026-10-03.
- ↑ 참고: “남자에게도 삼종지도가 있다는데... 아시나요?”, 오마이뉴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97905, 확인날짜=202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