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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전곡리 유적(漣川 全谷里 遺蹟)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한탄강 기슭에 있는 전기 구석기 시대 유적으로, 1978년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확인되어 세계 구석기 연구의 통설을 바꾼 곳이다.

전곡리에서 나온 주먹도끼(국립중앙박물관)

1978년 동두천에 주둔하던 미군 병사 그렉 보웬(Greg Bowen)이 한탄강 유원지에서 석기 몇 점을 주워 프랑스의 구석기 학자 프랑수아 보르드에게 알렸고, 보르드의 소개로 서울대학교 박물관의 김원룡 교수에게 신고되었다. 이듬해인 1979년 김원룡을 단장으로 한 조사단이 첫 발굴을 시작했고, 같은 해 10월 2일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1][2] 이후 수십 차례의 시굴과 발굴에서 주먹도끼·가로날도끼·찍개·긁개 등 수천 점의 석기가 나왔다. 발굴 횟수는 박물관 안내에서도 시점에 따라 '20회 이상', '30여 차례'로 달리 적혀 있다.[2]

  •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 큰 돌의 양면을 고르게 떼어 내 끝을 뾰족하거나 둥글게 다듬은 대형 석기이다. 나무를 다듬고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바르는 등 여러 일에 쓴 만능 도구였다. 전곡리의 주먹도끼는 주로 석영·규암으로 만들었다.
  • 모비우스 학설의 반박 - 미국 하버드 대학의 고고학자 모비우스는 인도 동쪽의 동아시아에는 정교한 주먹도끼가 없고 찍개만 쓰였다며 구석기 문화를 둘로 나누었다. 전곡리의 발견으로 이 주장은 근거를 잃었다.[2]
  • 지층과 연대 - 유적은 신생대 제4기에 북쪽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굳은 현무암 대지 위의 퇴적층에 있다. 현무암은 약 50만 년 전과 약 17만 년 전의 두 종류로 측정되었고, 2021~2022년 조사에서는 가장 아래 유물층이 적어도 20만 년 전에 쌓인 것으로 나왔다. 유적의 연대는 연구자마다 견해가 갈린다.
  • 보존과 활용 - 사적의 넓이는 국가유산포털에 799,022㎡, 전곡선사박물관 안내에 778,296㎡로 서로 다르게 적혀 있다. 유적 곁에는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전곡선사박물관이 있고, 해마다 구석기 축제가 열린다.[1][2]

구석기 시대의 다른 유적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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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특징
연천 전곡리 동아시아 최초의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확인(1978)
공주 석장리 1964년부터 발굴된, 남한에서 처음 체계적으로 조사한 구석기 유적
단양 수양개 슴베찌르개 등 후기 구석기 석기 제작터
청원 두루봉 동굴 '흥수아이'라 불리는 어린아이 뼈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 토기가 나온 신석기 시대 집터
  1. ↑ 1.0 1.1 연천 전곡리 유적,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10-19 확인.
  2. ↑ 2.0 2.1 2.2 2.3 전곡리 유적, 전곡선사박물관, 경기문화재단,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