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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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 전투(彈琴臺 戰鬪)는 1592년(선조 25) 4월 28일 임진왜란 초기에 도순변사 신립이 이끄는 조선군이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고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군과 싸우다 크게 패한 전투이다.

4월 13일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이 빠르게 북상하자, 조정은 이일을 순변사로 보내 경상도 쪽 길목을 막게 하고 이어 신립을 도순변사로 삼아 충주로 내려보냈다. 이것은 일본군을 서울 남쪽에서 막으려는 마지막 시도였다. 그러나 이일이 4월 24일 상주에서 패해 충주로 물러나면서 일본군은 조령과 죽령 앞까지 이르렀다.[1]
- 조령이냐 평지냐 - 신립은 충청도 군사 8천여 명을 모았다. 종사관 김여물과 충주 목사 이종장 등은 험한 조령(문경새재)에서 막아야 한다고 했으나, 신립은 기병을 쓸 수 있는 넓은 들에서 싸워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2]
- 배수진 - 4월 26일 충주 서북쪽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곳의 탄금대에 물을 등지고 진을 쳤다. 그러나 앞쪽에 논이 많아 말을 달리기 어려웠고, 척후가 막혀 적의 움직임도 알지 못했다.[2]
- 패전 - 4월 28일 고니시가 이끄는 일본군이 충주성과 달천 강변, 산 쪽 세 갈래로 다가와 조선군을 에워쌌다. 기병이 돌격했으나 조총을 앞세운 일본군에 무너졌고, 신립은 김여물과 함께 싸우다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2]
백과사전은 충주 목사 이름을 이종장(李宗長)으로, 『신편 한국사』는 이종장(李宗張)으로 적는다. 『신편 한국사』는 이일을 상주에서 깨뜨린 부대를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로 적었는데, 탄금대에서 신립을 깨뜨린 것은 두 자료 모두 고니시의 부대로 적는다. 일본군 병력은 『신편 한국사』가 2만여 명으로 적었다.[1]
| 때 | 싸움 | 내용 |
|---|---|---|
| 1592.4.14~15 | 부산진·동래성 전투 | 정발·송상현 전사 |
| 1592.4.24 | 상주 싸움 | 순변사 이일 패배 |
| 1592.4.28 | 탄금대 전투 | 신립이 배수진을 쳤다가 패배 |
| 1592.7 | 한산도 대첩 | 이순신이 학익진으로 승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