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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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사건(居昌事件, 1951)은 6.25 전쟁 중인 1951년 2월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공비 토벌에 나선 국군 제11사단 제9연대 제3대대가 주민 719명을 집단 학살한 사건으로, 1996년 김영삼 정부 때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특별 조치법이 만들어졌다.
지리산 일대의 빨치산 토벌에 나선 국군 제11사단 제9연대 제3대대는 1951년 2월 5일 신원면에 들어갔다가, 2월 8일 신원 지서가 빨치산의 공격을 받자 다시 돌아와 2월 9일부터 주민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2월 10일에는 탄량골에서 100여 명을 죽였고, 2월 11일 와룡리·대현리·중유리 주민 1,000여 명을 신원 국민학교에 모은 뒤 군경·공무원 가족을 가려 돌려보내고 남은 사람들을 박산골로 끌고 가 총살했다. 희생자는 15세 이하 어린이 359명을 포함해 모두 719명이었다.[1]
- 국회 폭로 - 1951년 3월 29일 거창 출신 국회의원 신중목이 피란 국회에서 사건을 폭로했다. 국회는 진상 조사단을 보냈으나, 경남 계엄 민사부장 김종원이 군인들을 공비로 꾸며 조사단에 총격을 가하게 해 현장 조사를 막았다.
- 책임자 처벌 - 국방·내무·법무 장관이 물러났고, 1951년 12월 군법 회의에서 연대장 오익경에게 무기, 대대장 한동석에게 징역 10년, 김종원에게 징역 3년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1년도 지나지 않아 이들을 모두 특별 사면했다.[1]
- ↑ 1.0 1.1 거창사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 ↑ 거창사건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 국가법령정보센터, 법제처,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