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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金泳三政府, 1993~1998)는 30여 년 만에 군 출신이 아닌 민간인 대통령 김영삼이 집권한 정부로, 스스로 '문민정부'라 부르며 금융 실명제·지방 자치제 전면 실시 등 개혁을 펼쳤으나 임기 말 외환 위기를 맞았다.

김영삼은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 자유당에 들어가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1993년 2월 취임했다. 5·16 군사 정변 이후 이어진 군인 출신 대통령 시대를 끝냈다는 뜻에서 '문민정부'를 내걸었다. 집권 초기 높은 지지 속에 부패 척결과 과거 청산에 힘썼으나, 1997년 한보 비리와 아들의 국정 개입 사건, 외환 위기로 지지를 잃었다.

  • 공직자 재산 등록 - 1993년 공직자 윤리법을 고쳐 고위 공직자의 재산을 공개하게 했다.
  • 하나회 해체 - 군 안의 사조직 하나회를 정리해 군의 정치 개입 고리를 끊었다.
  • 거창 사건 명예 회복 - 1996년 1월 「거창 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 조치법」을 만들어, 6.25 전쟁 중 국군의 공비 토벌 작전에서 희생된 거창 사건 주민과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게 했다.
  • 금융 실명제 - 1993년 8월 12일 대통령 긴급 명령으로 모든 금융 거래를 실제 본인 이름으로만 하게 했다. 1995년에는 부동산 실명제를 시행했다.[1]
  • 지방 자치제 전면 실시 - 1995년 6월 지방 의회 의원과 함께 지방 자치 단체장까지 주민이 직접 뽑는 전국 동시 지방 선거를 치렀다. 1991년 노태우 정부 때는 지방 의회 선거만 치렀다.
  • 역사 바로 세우기 - 1995년 옛 조선 총독부 건물 철거를 시작했고, 5·18 특별법을 만들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12·12 군사 반란과 5·18 진압 책임으로 구속·처벌했다.[2]
  • 1996년 국민학교의 이름을 초등학교로 바꾸었다.
  • 세계화 -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타결되어 쌀 시장 일부 개방이 결정되었고, 1995년 세계 무역 기구(WTO)가 출범했다. 1996년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했다.
  • 노동계 - 1995년 11월 전국 민주 노동조합 총연맹(민주노총)이 창립되었다.
  • 외환 위기 - 대기업의 연쇄 부도와 외환 보유고 고갈로 1997년 12월 국제 통화 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했다.
  • 남북 관계 - 1994년 남북 정상 회담이 합의되었으나 김일성의 사망으로 열리지 못했다.

다른 정부의 정책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정부
금융 실명제, 지방 자치 단체장까지 뽑는 지방 자치제 전면 실시, OECD 가입 김영삼 정부
지방 의회 의원 선거만 실시(1991), 소련·중국과 수교 노태우 정부
외환 위기 극복,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 시행 김대중 정부
6개 구단 프로 야구 출범 전두환 정부
  1. ↑ 금융실명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5·18광주민주화운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