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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甄萱, 867~936)은 신라 말 서남해의 군인으로 일어나 900년 완산주(전주)에 도읍하고 후백제를 세운 왕이다.

상주 가은현(지금의 문경) 사람으로, 아버지는 농민 출신 호족 아자개이다. 신라 서남해안을 지키는 비장으로 공을 세웠다. 진성여왕 때 정치가 어지러워지고 각지에서 호족이 일어나자 892년 무진주(광주)를 점령하고 스스로 왕을 칭했다. 900년 완산주로 옮겨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다시 일으킨다며 나라 이름을 후백제라 하고 관직을 정비했다.[1]

후백제는 바닷길을 이용해 중국의 여러 나라와 활발히 교류했다.

  • 오월 - 900년 무렵부터 사신을 보냈고, 오월 왕은 견훤에게 검교태보(檢校太保) 벼슬을 더해 주었다.[1]
  • 후당 - 925년 후당의 책봉을 받았다.
  • 거란·일본 - 거란과도 사신을 주고받았고, 일본과도 교섭을 시도했다.[2]

고려와의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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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7년 신라 침공 - 경주를 습격해 포석정에 있던 경애왕을 죽게 하고 경순왕을 세웠다.
  • 공산 전투(927) - 신라를 도우러 온 왕건의 군대를 지금의 대구 팔공산 일대에서 크게 무찔렀다. 이 싸움에서 고려의 신숭겸·김락이 왕건을 대신해 전사했다.
  • 고창 전투(930) - 지금의 안동에서 고려에 크게 져 8천여 명의 사상자를 냈고, 이후 세력이 기울었다.

견훤이 넷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935년 큰아들 신검이 금강을 죽이고 견훤을 금산사에 가두었다. 석 달 뒤 나주로 탈출해 고려에 귀순했고, 왕건은 그를 '상보'로 높였다. 936년 견훤은 고려군과 함께 일리천 전투에 나서 아들 신검의 군대를 쳤다. 후백제가 멸망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황산의 절에서 병으로 죽었다(→ 후삼국 통일).

후삼국의 인물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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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물
완산주에 후백제 건국, 후당·오월에 사신 파견,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 견훤
양길의 부하로 성장, 광평성 설치, 국호 태봉 궁예
일리천에서 신검의 군대를 물리침, 역분전 지급 고려 태조
고려에 나라를 바치고 경주의 사심관이 됨 경순왕
  1. ↑ 1.0 1.1 견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후백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