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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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弓裔, ?~918)는 신라 말 양길의 부하로 세력을 키워 901년 후고구려를 세우고, 국호를 마진·태봉으로 바꾸며 광평성 등 여러 관부를 둔 왕이다.
신라 왕족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버림받았다고 전한다. 10여 세에 세달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고 법호를 선종이라 했다. 신라 하대 진성여왕 때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절을 나와 죽주의 기훤에게 의탁했다가, 892년 북원(원주)의 호족 양길의 부하가 되었다. 양길에게서 군사를 받아 명주(강릉) 일대를 비롯한 10여 군현을 차지하며 독자 세력이 되었다.[1]
896년 송악(개성)의 호족 왕건 집안이 귀부했고, 899년 양길의 군대를 꺾어 중부 지방의 패자가 되었다. 한때 전국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할 만큼 세력이 컸다.
- 901년 후고구려 건국 - 송악을 도읍으로 삼고 고구려를 잇는다고 내세워 옛 고구려 지역 호족의 지지를 모았다.
- 904년 국호 마진, 연호 무태 - 이때 광평성을 설치하고 병부 등 여러 관부를 두었다. 광평성은 으뜸 행정 관부로, 국가 중대사에 대한 호족의 뜻을 모으는 기구였다고 본다.
- 9관등제 - 정광·원보 등의 독자 관계를 마련했다.
- 905년 철원 천도 - 왕건 집안의 근거지인 송악을 떠나 철원으로 도읍을 옮기고 연호를 성책으로 바꾸었다.
- 911년 국호 태봉 - 연호를 수덕만세로, 914년에는 정개로 바꾸었다.
궁예는 스스로 미륵불이라 일컫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는 관심법을 내세워 신하와 왕비·아들까지 죽였다. 신라를 '멸도'라 부르며 적대했다. 918년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이 왕건을 추대하는 정변을 일으키자 도망쳤다가 백성에게 죽임을 당했다. 왕건은 고려 태조로 즉위해 고려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