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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 통일(後三國統一)은 고려가 935년 신라를 받아들이고 936년 일리천 전투에서 후백제를 무너뜨려 신라 말에 갈라진 후삼국을 하나로 합친 일이다.

신라 하대에는 왕위 다툼이 잦았고, 진성여왕 때인 889년 사벌주(상주)에서 원종·애노의 난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전국에서 반란이 잇따랐다. 지방의 호족은 성주·장군을 자칭하며 독자적인 군대와 지배 기구를 갖추었다. 이 가운데 견훤이 900년 완산주에 후백제를, 궁예가 901년 송악에 후고구려(뒤의 마진·태봉)를 세워 신라와 함께 후삼국 시대가 열렸다. 918년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웠다.[1]

  • 918년 고려 건국 - 고려 태조는 신라와 손잡는 친신라 정책과 호족을 끌어안는 정책을 폈다. 견훤과는 겉으로 화친하면서 맞섰다.
  • 927년 공산 전투 - 견훤이 경주를 습격해 경애왕을 죽게 하고 경순왕을 세웠다. 신라를 구하러 온 왕건은 공산 동수(대구 팔공산 일대)에서 크게 져 신숭겸·김락이 전사하고 자신도 겨우 살아남았다. 신숭겸은 왕건의 갑옷을 입고 대신 싸웠다고 전한다.
  • 930년 고창 전투 - 고창(안동)에서 유금필의 활약과 고창 성주 김선평·권행·장길 등 지역 호족의 도움으로 후백제군에 크게 이겼다. 주도권이 고려로 넘어왔다.
  • 934년 운주 전투 - 운주(홍성)에서 다시 이기자 웅진 이북의 30여 성이 항복했다. 같은 해 발해 세자 대광현이 유민을 이끌고 고려에 들어왔다.
  • 935년 견훤의 귀순 - 후백제에서 신검이 아버지 견훤을 금산사에 가두고 왕위를 빼앗았다. 견훤은 탈출해 고려에 귀순했다.
  • 935년 신라의 항복 - 경순왕이 나라를 바쳤다. 태조는 그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았다.
  • 936년 일리천 전투 - 태조는 견훤과 함께 일선군(구미)의 일리천에서 신검의 후백제군을 크게 무찔렀고, 황산(논산)까지 쫓아가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 후백제가 멸망하며 통일이 이루어졌다.

신라의 삼국 통일이 외세인 당의 힘을 빌렸던 것과 달리, 후삼국 통일은 고려가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었다. 발해 유민까지 받아들여 민족 통합의 성격을 띠었다. 신라 귀족과 각지 호족이 고려 지배층으로 흡수되었다.

후삼국의 인물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인물
일리천에서 신검의 군대를 물리침 고려 태조(왕건)
공산 전투에서 전사 신숭겸
후백제 건국, 후당·오월에 사신 견훤
광평성 설치, 국호를 마진·태봉으로 바꿈 궁예
고려에 항복하고 경주의 사심관이 됨 경순왕(김부)
  1. ↑ 후삼국 통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