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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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高麗 太祖, 877~943, 재위 918~943)는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운 뒤 936년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의 첫 왕으로, 이름은 왕건(王建)이다.
- 민생 안정 - 궁예 때의 가혹한 수취를 줄이고 취민유도를 내세워 세금을 수확의 10분의 1로 낮추었다. 가난한 백성에게 곡식을 빌려주는 흑창을 두었다(→ 고려의 사회 제도).
- 역분전 - 940년 통일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인품과 공로에 따라 토지를 나누어 주었다.
- 호족 통합 - 각지 유력 호족의 딸과 혼인했고(왕후·부인 29명), 공이 큰 호족에게 왕씨 성을 내려 주었다(사성 정책).
- 호족 견제 - 지방 출신 고관에게 출신지의 일을 맡겨 책임지게 한 사심관 제도(경순왕 김부를 경주 사심관으로 삼은 것이 처음), 호족 자제를 개경에 머물게 한 기인 제도를 실시했다.
- 북진 정책 - 고구려를 잇는다는 뜻에서 평양을 서경으로 삼아 중시하고 청천강~영흥만까지 영토를 넓혔다.
- 거란 배척 - 942년 거란이 보낸 낙타 50필을 개경의 만부교 아래에 매어 굶겨 죽이고 사신을 섬으로 귀양 보냈다(만부교 사건). 발해를 멸망시킨 나라라는 이유였다.
- 정치 규범 -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신하가 지킬 도리를 밝혔고, 죽기 전 박술희를 통해 후대 왕에게 훈요 10조를 남겼다. 불교 숭상, 서경 중시, 연등회·팔관회 개최, 거란 경계 등이 담겼다.
- 태조 왕건 청동상 - 1992년 개성의 태조 무덤(현릉) 부근에서 나온 태조의 청동상은 제후의 관이 아닌, 황제가 쓰는 통천관을 쓰고 있다. 고려가 밖으로는 책봉을 받으면서 안으로는 황제국 체제를 갖춘 모습을 보여 준다(→ 외왕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