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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자(癸未字)는 조선 태종이 1403년(태종 3, 계미년) 주자소를 설치해 만든 조선 최초의 구리 활자이다.

계미자로 찍은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6(국보)

태종은 나라에 책이 적어 유생들이 널리 읽지 못하는 것을 걱정해 1403년 2월 주자소(鑄字所)를 새로 설치하고, 예문관 대제학 이직, 총제 민무질, 지신사 박석명, 우대언 이응을 제조로 삼았다. 궁중(내부)의 구리와 쇠를 내놓고 신하들에게도 스스로 구리를 내게 해 활자를 부었다.[1] 고려 말 서적원 제도를 본받은 것으로, 주조는 몇 달 만에 끝났다.[2]

  • 글자체 - 권근의 주자발은 옛 주석본 『시경』·『서경』·『춘추좌씨전』을 글자본으로 삼았다고 적었다. 지금 남은 계미자 책은 남송 촉본과 비슷한 글자체를 보인다.
  • 조판 방식 - 구리판 바닥에 밀랍을 깔고 활자를 꽂은 뒤 녹였다 굳혀 고정했다. 활자 끝을 송곳처럼 뾰족하게 만들었으나 크기와 두께가 고르지 않아 인쇄 도중 자주 흔들렸고, 밀랍이 많이 들면서도 하루에 몇 장밖에 찍지 못했다.
  • 보급 - 그래도 1410년부터는 주자소에서 책을 찍어 팔게 해 서적 보급에 크게 이바지했다.[2]
  • 개량 - 이런 결점을 고치려고 세종 때 경자자(1420)와 갑인자(1434)가 만들어졌다. 갑인자는 활자와 판을 정교하게 맞추어 밀랍 없이 고정할 수 있었다.

남아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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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자로 찍은 책 가운데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6·17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국가유산청 설명은 규장각 소장 권16이 1412년(태종 12) 무렵 찍힌 것으로 추정하며, 조선 최초의 동활자로 찍은 책이라는 점에서 고려와 조선 초기 활자 주조술과 조판술 연구의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한다.[3]

금속 활자와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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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인쇄물 때 내용
『상정고금예문』 고려 1234년 무렵 금속 활자로 찍었다는 기록만 전함(『동국이상국집』)
직지심체요절 고려 1377년 청주 흥덕사, 현존 세계 최고(最古) 금속 활자본
계미자 조선 태종 1403년 주자소에서 만든 조선 최초의 동활자
갑인자 조선 세종 1434년 계미자·경자자를 개량, 조선 활자의 모범
  1. ↑ 『태종실록』 5권, 태종 3년 2월 13일, 주자소를 설치하고, 이직·민무질·박석명·이응을 제조로 삼다,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2. ↑ 2.0 2.1 계미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3. ↑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6,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