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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世宗, 1397~1450, 재위 1418~1450)은 조선의 제4대 왕으로, 집현전을 중심으로 학문과 제도를 정비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했으며 과학 기술·농업·국방에서 조선 전기 문물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름은 도(祹)이며 태종의 셋째 아들이다. 1418년 세자 양녕 대군이 폐위되자 세자가 되었고, 같은 해 왕위를 물려받았다. 즉위 초 4년간은 상왕 태종이 군사권을 쥐고 있었다. 1420년 집현전을 두어 젊은 학자를 기르고, 이들을 중심으로 의례·법제를 유교식으로 정리하며 방대한 편찬 사업을 벌였다. 1436년에는 6조 직계제를 의정부 서사제로 바꾸어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꾀했다.[1]

  • 집현전 - 1420년 궁궐 안에 둔 학문 연구 기관. 경연과 서연을 맡고 옛 제도를 연구했다. 학자들을 다른 관청으로 옮기지 않고 오래 머물게 했다.
  • 사가독서 - 1426년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에게 휴가를 주어 집에서 독서와 연구에 전념하게 한 제도. 1442년에는 신숙주·성삼문 등을 절(진관사)에서 독서하게 했다. 세조가 집현전을 없애면서 끊겼다가 성종 때 독서당으로 되살아났다.[2]
  • 의정부 서사제 - 6조의 일을 의정부 재상들이 먼저 심의해 왕에게 올리게 한 제도(1436).
  • 부민고소금지법(1420) - 예조판서 허조의 건의로 고을 아전과 백성이 수령·관찰사를 고소하지 못하게 해 수령권을 세웠다.
  • 훈민정음 - 1443년 창제, 1446년 반포했다. 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 등 집현전 학자들이 도왔다. 「용비어천가」·「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을 한글로 펴냈다. 1448년에는 우리 한자음을 바로잡아 훈민정음으로 적은 운서 『동국정운』을 간행했다.
  • 『삼강행실도』 - 충신·효자·열녀의 행실을 그림과 글로 엮은 윤리서(1434). 권채가 서문을 썼다.
  • 『농사직설』 -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농민의 경험에서 모은 농서(1429).
  • 『향약집성방』·『의방유취』 - 우리 약재와 처방을 정리한 의학서.
  • 『칠정산』 내편·외편 - 원의 수시력과 이슬람 역법(회회력)을 참고해 한양을 기준으로 해와 달, 다섯 행성의 움직임을 계산한 역법서. 내편은 이순지·김담 등이 1442년에 완성했다.[3]

과학 기술과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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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문·시간 기구 - 장영실 등이 혼천의·간의, 해시계 앙부일구, 자동 물시계 자격루(1434)를 만들었다.
  • 측우기 - 1441년 만들어 이듬해 고쳐 완성했다. 전국의 강우량을 재었다.
  • 갑인자 - 1434년 주조한 금속 활자.
  • 공법 -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전분 6등법, 그해 풍흉에 따라 연분 9등법으로 전세를 1결당 20두~4두로 거두게 한 세법(1444).

국방과 대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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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시마 정벌 - 1419년 이종무가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를 쳤다(상왕 태종이 주도).
  • 계해약조 - 1443년 쓰시마 도주와 맺어 세견선 50척, 세사미두 200석으로 무역을 제한했다.
  • 4군 6진 - 최윤덕이 압록강 쪽에 4군, 김종서가 두만강 쪽에 6진을 개척해 오늘날 국경선이 거의 이루어졌다. 이후 삼남 백성을 북방으로 옮기는 사민 정책을 폈다.

다른 왕의 업적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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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왕
집현전, 사가독서, 『칠정산』, 훈민정음, 공법 세종
주자소를 두어 계미자 주조, 6조 직계제, 호패법 태종
『경국대전』 반포, 『국조오례의』 완성, 홍문관, 관수관급제 성종
『동의보감』 간행, 대동법(경기도) 실시 광해군 (→ 동의보감)
『대전통편』 반포, 규장각, 장용영 정조
  1. ↑ 세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독서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3. ↑ 칠정산내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