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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전투(古昌 戰鬪)는 930년 고려 태조 왕건이 고창군(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의 병산에서 견훤의 후백제군을 크게 물리친 싸움으로, 이 승리로 후삼국의 주도권이 고려로 넘어왔다.

고창 병산 전투라고도 한다. 927년 공산 전투에서 크게 이긴 견훤은 경상도 북부로 세력을 넓혀 929년 12월 고창군을 에워쌌다. 고창은 신라로 통하는 길목이어서 이곳을 잃으면 고려는 신라와의 연결이 끊길 처지였다. 왕건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구원에 나섰다. 『고려사』 유금필 열전에 따르면, 고창으로 가는 길에 장수들이 싸움에 질 때를 걱정하자 유금필은 싸워 보기도 전에 패배부터 걱정할 까닭이 없다며 서둘러 나아가 칠 것을 청했고, 왕건이 이를 따랐다.[1]

  • 병산 싸움 - 『고려사』에 따르면 930년(태조 13) 정월 병술일, 왕건은 고창군의 병산에, 견훤은 석산에 진을 쳤는데 서로 500보 남짓 떨어져 있었다. 저녁까지 싸운 끝에 견훤이 패해 달아났고, 고려군은 시랑 김악을 사로잡았으며 죽은 후백제군이 8,000여 명에 이르렀다.
  • 호족의 도움 - 고창군의 성주 김선평과 지역 유력자 권행·장길이 고려 편에 서서 큰 공을 세웠다. 왕건은 싸움 뒤 김선평을 대광, 권행과 장길을 대상으로 삼았다.[2] 이들은 뒤에 안동 김씨·안동 권씨·안동 장씨의 시조로 받들어졌고, 장길은 장정필이라는 이름으로도 전한다.

『고려사』는 싸움 직후 영안·하곡·직명·송생 등 30여 군현이 잇따라 고려에 항복했다고 적었고, 2월에는 신라 동쪽 바닷가의 고을들도 귀부했다.[2] 고창군은 이 공으로 '안동부'로 승격되었다. 후백제는 이때부터 기울기 시작해 934년 운주(홍성) 싸움에서도 졌고, 935년 내분 끝에 견훤이 고려에 귀순했다.[1]

백과사전은 전투 장소를 지금의 안동시 와룡면으로, 해를 경순왕 4년(930)으로 적는다. 『고려사』는 태조 13년 정월의 일로 적어 해는 같다. 셋째 공신의 이름은 『고려사』에 장길(張吉)로, 안동 장씨 집안 전승에는 장정필로 전한다.

후삼국 통일 과정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때 사건
927년 공산 전투: 신숭겸·김락 전사, 왕건 패배
930년 고창 전투: 김선평·권행·장길의 도움으로 고려 승리
934년 운주 전투 승리, 발해 세자 대광현이 고려에 옴
935년 견훤 귀순, 경순왕 항복
936년 일리천 전투: 후백제 멸망
  1. ↑ 1.0 1.1 고창전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2.0 2.1 『고려사』 권1 세가 태조 13년(930) 정월, 왕이 고창군 전투에서 견훤을 물리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