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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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金銅 延嘉七年銘 如來 立像)은 광배 뒷면에 고구려 연호 '연가 7년'과 만든 내력이 새겨진 고구려의 금동 불상으로, 1963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출토되었다.
높이 16.2cm의 작은 불상이지만 당당하고 힘찬 모습이며, 국보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1963년 7월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에서 발견되었다. 만든 해와 곳을 밝힌 가장 이른 시기의 한국 불상 가운데 하나로, 고구려 불교 조각의 기준이 된다.[1]
광배 뒷면에 새긴 글의 내용은 "연가 7년 기미년에 고려국(고구려) 낙랑의 동사(東寺) 주지 경(敬)과 제자 승려 연(演) 등 40명이 함께 현겁의 천불을 만들어 세상에 퍼뜨리기로 하였으니, 그 29번째 불상은 비구 도영이 공양한다"는 것이다.
- 연가 - 중국·일본에서 쓴 적이 없는 연호로, 고구려가 독자적으로 쓴 연호로 본다. 기미년은 539년(안원왕 9)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2]
- 고구려 불상이 신라 땅에서 - 평양에서 만든 천불 가운데 하나가 당시 신라 또는 가야 지역이던 의령에서 나왔다. 불상이 주변 나라로 옮겨 다녔음을 보여 주며, 고구려 불교의 영향력을 짐작하게 한다.
- 큰 광배 - 몸 뒤의 배 모양(주형) 광배가 몸에 비해 크고,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불꽃무늬가 가득하다.
- 두꺼운 옷과 정면 자세 - 두꺼운 옷이 몸을 감싸 신체 굴곡이 드러나지 않고, 옷자락 끝이 좌우로 날카롭게 뻗었다. 엄격하게 정면을 바라본다.
- 손 모양 - 오른손은 두려움을 없애 주는 시무외인, 왼손은 소원을 들어주는 여원인을 맺었다. 손과 얼굴이 몸에 비해 크다.
- 북위 양식의 영향 - 길쭉한 얼굴과 옅은 미소(고졸한 미소), 강한 선은 중국 북위 불상과 통하면서도 띠 매듭을 길게 늘어뜨리지 않는 등 고구려만의 특징을 보인다.
- 이 양식은 뒷날 발해의 이불병좌상에도 이어졌다.
- ↑ 금동 연가7년명 여래 입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 ↑ 연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