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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신(金得臣, 1754~1822)은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으로, 김홍도의 화풍을 이어 서민의 생활을 익살스럽게 그렸으며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장면을 담은 「파적도」(야묘도추)로 유명하다. 호는 긍재(兢齋)이다.

대표적인 화원 집안인 개성 김씨 출신으로, 큰아버지 김응환이 집안에서 처음 화원이 되었고 외가인 신평 한씨도 화원 집안이었다.[1] 10대 후반부터 화원으로 활동했다. 1791년 정조 어진을 그릴 때 보조 화사로 참여했고, 1795년 「진찬도」 병풍, 1796년 『화성행행도』 제작에 참여했다. 1815년까지 40여 년 동안 20여 차례 궁중 행사 그림에 불려 나갔고, 화원 출신 군관으로 초도 첨절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1754년 출생설은 큰아버지 김응환(1742~1789)과 나이 차가 너무 적어 오류일 가능성이 지적된다.[2]

  • 「파적도」(야묘도추) - 봄날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자 어미닭이 사납게 쫓고, 집주인은 장죽을 휘두르며 마루에서 뛰어내리고 아내는 맨발로 발을 구르는 순간을 익살스럽게 담았다. 간송미술관에 있다.[3]
  • 『긍재풍속화첩』 - 「파적도」가 실린 풍속화첩으로, 2018년 '김득신 필 풍속도 화첩'이라는 이름으로 보물이 되었다.
  • 기타 - 「풍속팔곡병」, 「신선도」 등이 있다.[1]

산수화에서는 김응환의 필묵법이, 풍속화·영모화·신선 그림에서는 김홍도의 형식이 두드러진다.

  1. ↑ 1.0 1.1 김득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김득신,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
  3. ↑ 야묘도추, 주요 소장품, 간송미술문화재단,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