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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金弘道, 1745~1806 무렵)는 조선 후기 정조의 총애를 받은 도화서 화원으로, 「씨름」·「서당」 같은 풍속화로 이름났고 산수화·신선도·화조화 등 모든 분야에 뛰어났다. 호는 단원(檀園)이다.

서른 살 위인 문인 화가 강세황의 아낌을 받았으며 18~19세 무렵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1773년 영조 어진, 1781년과 1791년 정조 어진을 그리는 데 참여했고, 그 공으로 안기도 찰방(1784~1786)과 연풍 현감(1792~1795)을 지냈다. 1788년 정조의 명으로 김응환과 함께 금강산 등 영동 9군을 50여 일 돌며 명승을 그렸고, 1790년 용주사 불화 제작을 이끌었으며, 1795년 『원행을묘정리의궤』의 그림을 주관했다. 정조는 "그림에 관한 일이면 모두 홍도에게 맡겼다"고 할 만큼 그를 아꼈다. 1800년 정조가 죽은 뒤 형편이 어려워졌고, 1805년 「추성부도」를 마지막으로 그린 뒤 이듬해 초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1]

  • 풍속화 - 국립중앙박물관의 『단원 풍속도첩』(보물)에 「씨름」·「서당」·「무동」 등 25점이 전한다. 배경을 줄이고 인물의 자세와 동작만으로 화면을 짜서 서민의 일과 놀이를 따뜻하고 익살스럽게 담았다. 「씨름」은 구경꾼을 위아래에 둥글게 배치하고 가운데에 맞붙은 두 씨름꾼을 놓은 구도로 유명하다. 다만 이 화첩은 그림마다 수준 차이가 있고 후대에 손댄 흔적이 있다며 모두 김홍도의 진작인지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2]
  • 신선도 - 「군선도」 병풍은 신선 그림에 능했다는 평을 뒷받침한다.
  • 산수화 - 금강산 그림에서 정선 등의 화법을 바탕으로 실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진경산수화를 새 단계로 이끌었다.
  • 기타 - 「서원아집도」는 강세황에게서 '신필'이라는 평을 받았다.[1]

조선 후기 화가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화가 대표작 특징
김홍도 「씨름」, 「서당」, 「무동」 서민의 일상을 소탈하고 익살스럽게
신윤복 「월하정인」, 「단오풍정」 양반의 풍류와 남녀의 애정, 화려한 색
김득신 「파적도」(야묘도추) 김홍도 화풍을 이은 해학적 풍속화
정선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진경산수화 개척
  1. ↑ 1.0 1.1 김홍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단원 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