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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申潤福)은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 출신의 화가로, 한량과 기녀, 남녀의 애정과 양반의 풍류를 섬세한 선과 화려한 색으로 그린 풍속화로 이름났다. 호는 혜원(蕙園)이다.

고령 신씨로 자는 입보이며, 조선 전기 문신 신말주의 11대손이다. 아버지 신한평도 궁중 화원인 차비대령화원으로 일했다.[1] 도화서 화원으로 첨사 벼슬을 지냈으나 그림이 지나치게 저속하다는 이유로 도화서에서 쫓겨났다고 전하며, 그 뒤 직업 화가로 많은 풍속화를 그렸다. 김홍도·김득신과 함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풍속화가로 꼽힌다.[2] 실학자 이익의 손자 이구환은 그가 이 집 저 집을 떠돌며 여항인과 잘 어울렸다고 적었다.[1]

  • 『혜원전신첩』 - 1첩 30면의 풍속화첩으로 국보로 지정되었고 간송미술관에 있다. 「단오풍정」, 「월하정인」(달빛 아래 담장 옆의 두 남녀), 「청금상련」 등이 실렸다. 일본으로 넘어갔던 것을 1930년 전형필이 사들여 새로 꾸몄다.[2]
  • 『여속도첩』 - 여인들의 생활 모습을 담은 화첩이다.
  • 「미인도」 - 젊은 여인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린 그림이다.[1]

인물뿐 아니라 집과 거리 같은 배경까지 사실적으로 그려 당시 도시 생활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서민의 일과 놀이를 담백하게 그린 김홍도와 달리, 세련된 필선과 짙은 채색으로 낭만적인 분위기를 냈다.

  1. ↑ 1.0 1.1 1.2 신윤복,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2.0 2.1 풍속화, 옛 사람들의 생활을 엿보다(혜원 신윤복), 국가유산청,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