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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후(金允侯, 생몰년 미상)는 고려 고종 때 몽골의 침입에 맞서 1232년 처인성에서 몽골 장수 살리타를 사살하고, 1253년 충주성에서 관노의 문서를 불태우며 70여 일 동안 성을 지켜 낸 승려 출신 무신이다.

용인 처인성 터

일찍이 승려가 되어 백현원에 머물렀다. 가계는 전하지 않는다. 고려 몽골 전쟁 동안 두 차례 큰 승리를 거두었고, 그 공으로 무반의 높은 벼슬에 올랐다. 그의 활약은 관리와 승려, 부곡민·관노·백정 같은 천한 신분의 사람들이 함께 몽골에 맞선 대몽 항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1]

처인성 전투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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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2차 침입 때 김윤후는 처인성(지금의 경기도 용인)으로 피난해 있었다. 몽골군 원수 살리타(살례탑)가 성을 공격하자 김윤후가 활로 쏘아 죽였고, 장수를 잃은 몽골군은 물러갔다. 처인성은 부곡이었으므로 처인 부곡민이 함께 싸운 것으로 본다. 고종이 그 공으로 상장군을 내렸으나, 김윤후는 "싸울 때 나는 활과 화살도 없었는데 어찌 무거운 상을 받겠는가" 하며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리고 사양해 섭랑장으로 바뀌었다.[2]

충주성 전투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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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충주산성 방호별감이 되었다. 몽골의 5차 침입 때 몽골군이 충주성을 70여 일 동안 에워싸 군량이 거의 떨어지자, 김윤후는 "힘을 다해 싸우면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벼슬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관노의 문서를 불태우고 빼앗은 소와 말을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자 몽골군은 기세가 꺾여 남쪽으로 내려가지 못했다. 이 공으로 김윤후는 감문위 상장군이 되었고, 관노와 백정까지 공을 세운 사람들이 차등 있게 벼슬을 받았다.[2]

1258년 동북면 병마사에 임명되었으나 동북면이 이미 몽골의 손에 들어가 부임하지 못했다. 원종 때 추밀원 부사·예부 상서를 거쳐 수사공 우복야에 올라 벼슬에서 물러났다.[1]

몽골과의 전투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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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때 인물·주체
귀주성 방어 1231년(1차 침입) 박서
처인성 전투 1232년(2차 침입) 김윤후와 처인 부곡민, 살리타 사살
죽주산성 방어 1236년(3차 침입) 송문주
충주성 전투 1253년(5차 침입) 김윤후, 관노 문서 소각
다인철소 항전 1255년 충주 다인철소 주민, 익안현으로 승격
삼별초 항쟁 1270~1273년 배중손·김통정 (→ 삼별초)
  1. ↑ 1.0 1.1 김윤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2.0 2.1 『고려사』 권103 열전16 김윤후,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