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몽골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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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몽골 전쟁은 1231년(고종 18)부터 1259년(고종 46)까지 몽골이 여러 차례 고려에 쳐들어오고, 최씨 무신 정권이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맞선 전쟁이다. 대몽 항쟁이라고도 한다.
- 1차 침입(1231) - 살리타가 이끄는 몽골군이 쳐들어왔다. 귀주성에서 박서가 끝까지 막아 냈으나 개경이 포위되자 고려는 강화를 맺었다. 몽골은 다루가치 72명을 두고 물러갔다.
- 강화 천도(1232) - 무신 집권자 최우가 도읍을 강화도로 옮기고 백성을 산성과 섬으로 들어가게 해(입보) 장기전을 준비했다(→ 최씨 무신 정권).
- 2차 침입(1232) - 살리타가 다시 쳐들어왔으나 용인 처인성에서 승려 김윤후가 이끈 군민에게 살리타가 화살에 맞아 죽자 물러갔다. 이때 대구 부인사에 있던 초조대장경이 불탔다.[2]
- 3차 침입(1235~1239) - 경주 황룡사 9층 목탑이 불탔다. 고려는 부처의 힘으로 적을 물리치려고 대장도감을 두어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을 새기기 시작해 1251년 완성했다.
- 죽주성 전투(1236) - 3차 침입 때 죽주 방호별감 송문주가 죽주산성(지금의 안성 죽산)에서 15일 동안 몽골군의 공격을 막아 내고 물리쳤다. 송문주는 1차 침입 때 귀주성에서 박서와 함께 싸운 경험으로 몽골군의 공성 방법을 미리 알고 대비했다고 한다.
- 5차 침입(1253~1254) - 충주산성 방호별감 김윤후가 노비 문서를 불태우며 관노·백정을 독려해 70여 일 동안 성을 지켰다.
- 이후 침입 - 1255년 충주 다인철소 주민이 몽골군을 물리쳐 소가 익안현으로 승격되었다. 잘라이르타이가 이끈 침입(1254~1259) 때 가장 많은 사람이 끌려가고 죽었다.
- 최씨 정권 붕괴 - 1258년 최의가 살해되어 최씨 정권이 무너졌고, 같은 해 몽골은 화주(영흥)에 쌍성총관부를 두었다.
- 강화(1259) - 태자(뒤의 원종)가 몽골에 들어가 쿠빌라이를 만나 화의를 맺었다. 고려는 고유한 풍속을 지키는 것(불개토풍)을 약속받았다.
- 개경 환도와 삼별초 항쟁(1270~1273) - 1270년 무신 정권이 끝나고 개경으로 돌아가자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가 반발해 승화후 온을 왕으로 세우고 진도 용장성, 이어 김통정이 제주도 항파두리성으로 옮겨 싸우다 1273년 여몽 연합군에 진압되었다. 몽골은 제주에 탐라총관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