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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 정벌(羅禪征伐)은 효종 때인 1654년과 1658년 청의 요청으로 조선이 조총군을 보내 흑룡강(아무르강) 일대에서 러시아군을 물리친 두 차례의 출병이다.

'나선'은 러시아(Russia)를 한자로 옮긴 말이다. 17세기 중엽 모피를 찾아 시베리아로 나아간 러시아 카자크가 흑룡강 일대에 요새를 쌓고 송화강 방면까지 내려와 약탈을 일삼자 청이 군대를 보냈으나, 총포를 가진 러시아군에게 번번이 졌다. 이에 청은 조총에 능한 조선군을 요구했다. 『효종실록』에는 1654년 2월 청의 사신 한거원이 조총 잘 쏘는 군사 100명을 뽑아 3월 10일까지 영고탑으로 보내라는 자문을 전하자, 영의정 정태화가 북우후 변급을 지휘관으로 추천한 일이 실려 있다. 1658년 3월에도 청은 사신을 보내 군사와 군량을 다시 요구했다.[1]

두 차례의 출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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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차(1654, 효종 5) - 함경도 병마우후 변급이 조총군 100명과 초관·기고수 50여 명을 이끌고 영고탑에서 청군과 합류했다. 4월 28일 러시아군을 만나 며칠 만에 물리쳤고, 조선군은 전사자 없이 6월에 돌아왔다. 싸운 곳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흑룡강 방면으로, 우리역사넷 해설은 목단강과 송화강이 만나는 곳으로 적는다.
  • 2차(1658, 효종 9) - 신류가 조총군 200명과 초관·기고수 60여 명을 이끌고 나갔다. 6월 10일 송화강과 흑룡강이 만나는 곳에서 러시아 배들을 불화살로 불태워 지휘관 스테파노프를 비롯한 주력을 거의 무너뜨렸다. 조선군도 8명이 죽고 25명이 다쳤다.[2] 「나선정벌」 항목은 신류를 혜산진 첨사로 적지만, 같은 사전의 「신류」 항목과 우리역사넷 해설은 1656년 혜산진 첨사를 거쳐 이듬해 함경북도 병마우후가 된 뒤 출정했다고 적는다. 신류는 이 원정을 『북정일기』로 남겼다.[3]

효종이 즉위 후 준비해 온 북벌을 위해 기른 군사력이 실전에서 드러난 일로 평가된다. 다만 정작 북벌의 대상인 청의 지휘를 받았다는 점 때문에 당시에는 부끄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고, 숙종 때 이후에야 조선이 오랑캐를 물리친 일로 다시 해석되었다.

  1. ↑ 나선 정벌(『효종실록』 12권 5년 2월 2일, 20권 9년 3월 3일 기사 수록), 우리역사넷 사료로 본 한국사,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8 확인.
  2. ↑ 나선정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3. ↑ 신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