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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孝宗, 1619~1659, 재위 1649~1659)은 조선의 제17대 왕으로, 청에 당한 치욕을 갚으려 북벌을 준비했고 청의 요청으로 조총 부대를 보내 러시아를 친 나선 정벌이 그의 재위 기간에 있었다.

인조의 둘째 아들로, 왕자 시절 봉림대군이라 했다. 병자호란으로 조선이 청에 항복하자 형 소현세자와 함께 심양에 인질로 끌려가 8년 가까이 머물렀다. 1645년 소현세자가 귀국한 뒤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세자가 되었고, 1649년 즉위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계모 자의 대비의 상복 문제로 기해예송이 일어났다.[1]

  • 송시열·송준길 등 서인 산림과 무장 이완을 중용해 청을 치자는 북벌을 내세웠다.
  • 어영청을 확대 개편하고 훈련도감 군사를 늘렸으며, 남한산성 등의 방비를 강화했다.
  • 효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청의 국력이 강해지면서 북벌은 실행되지 못했다. 이후 숙종 때 윤휴가 북벌론을 다시 꺼냈다.

러시아가 흑룡강(아무르강) 쪽으로 내려오자 청이 조선에 조총 부대를 요청했다. 북벌을 준비하던 조선은 두 차례 군사를 보냈다.[2]

  • 1차(1654) - 변급이 조총군을 이끌고 출병해 러시아군을 물리쳤다.
  • 2차(1658) - 신류가 조총군을 이끌고 흑룡강 일대에서 러시아군을 크게 무찔렀다. 신류는 이 일을 『북정일기』로 남겼다.

'나선'은 러시아인(Russian)을 한자로 옮긴 말이다.

  • 하멜 표류(1653) -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착했다. 이들은 훈련도감에 배치되었다가 뒤에 탈출해 『하멜 표류기』를 남겼다.
  • 대동법 - 김육의 건의로 충청도(1651)와 전라도 해안 지역에 대동법을 넓혀 시행했다.
  • 시헌력 - 1653년 서양 역법을 반영한 청의 시헌력을 받아들였다.
  • 신속이 농서 『농가집성』을 펴냈다(1655).

이웃 왕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왕
나선 정벌(신류의 조총 부대), 북벌, 하멜 표류 효종
정묘호란·병자호란, 이괄의 난 인조
자의 대비의 복상 문제로 일어난 예송 현종 (→ 예송)
강홍립 부대의 사르후 전투 참전, 중립 외교 광해군
백두산정계비 숙종
  1. ↑ 효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
  2. ↑ 나선정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