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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직설(農事直說)은 1429년(세종 11) 세종의 명으로 정초·변효문 등이 각 지방 노농(老農)의 경험을 모아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한 농서이다.

『농사직설』

그때까지 지방의 권농은 중국 농서에 기대고 있었으나, 풍토가 다르면 농법도 다르다는 문제가 있었다. 세종은 1428년(세종 10) 경상·충청·전라 관찰사에게 명해 각 고을의 경험 많은 농부를 찾아가 다른 지역에 알릴 만한 농사 기술을 묻게 했다. 총제 정초가 이 보고를 바탕으로 종부 소윤 변효문과 함께 중복을 덜고 요점만 추려 한 권으로 엮었고, 정초가 서문을 썼다.[1][2]

  • 구성 - 종자 고르기와 보관(비곡), 논밭갈이(지경), 삼·벼·기장과 조·피·콩과 팥·보리와 밀·참깨·메밀 재배의 10항목으로 이루어졌다. 채소나 목화보다 곡식 작물이 중심이다.
  • 벼농사 - 물을 대고 씨를 바로 뿌리는 직파법, 마른 논에 뿌리는 건답법, 모를 길러 옮기는 묘종법(모내기)과 밭벼를 기르는 산도법을 땅과 물 사정에 따라 고르게 했다.
  • 농기구와 거름 - 쟁기·써레·쇠스랑·따비·호미 등을 쓰고, 인분·외양간 두엄·재거름·녹비를 쓰도록 했다.
  • 배포 - 1430년(세종 12) 각 도 관찰사와 수령, 서울의 2품 이상 관원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뒤 1492년(성종 23) 다시 찍어 내렸고, 1656년(효종 7) 신속의 『농가집성』에 실려 조선 후기까지 쓰였다. 일본에도 전해졌다.

조선의 서적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서적 때 내용
『농사직설』 1429년, 세종 노농의 경험을 모은 우리 풍토의 농법
『향약집성방』 1433년, 세종 우리 땅에서 나는 약재와 처방
『금양잡록』 성종 때, 강희맹 경기 금양 지방의 농사 경험
『농가집성』 1656년, 효종 신속, 모내기법 보급에 이바지
『동의보감』 1610년, 광해군 허준의 의서 (→ 동의보감)
  1. ↑ 농서 간행, 우리역사넷 사료로 본 한국사(『세종실록』 권44, 세종 11년 5월 16일),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2. ↑ 농사직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