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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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경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17~19세기 조선에서 농업 생산력이 늘고 상품 화폐 경제가 자라난 모습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 이앙법(모내기법) - 김매기 노동력이 크게 줄고 벼와 보리의 이모작이 가능해졌다.
- 광작 - 노동력이 덜 들게 되자 한 농가가 경작지를 넓혀 부농이 나타났다. 반면 땅을 잃은 농민은 임노동자가 되거나 도시·광산으로 흘러들었다.
- 상품 작물 - 시장에 내다 팔려고 담배·면화·인삼·채소·고추 등을 재배했다. 담배는 17세기 초 일본을 거쳐 들어와 빠르게 퍼졌다.
- 지대 - 일부 지역에서 수확량의 절반을 내는 타조법 대신 일정 액수를 내는 도조법이 나타났다.
- 민영 수공업 - 관청에 등록된 장인 대신 장인세를 내고 자유롭게 물건을 만들어 파는 수공업자가 늘었다. 상인이 자금과 원료를 미리 대주는 선대제도 성행했다.
- 광산 개발 - 17세기 중엽 정부가 민간의 채굴을 허용하고 세금을 거두는 설점수세제를 실시했다. 청과의 교역으로 은 수요가 커져 은광 개발이 활발했다.
- 덕대 - 상인 물주에게 자본을 받아 광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하고, 혈주와 채굴 노동자를 고용해 작업을 나누어 맡겼다.[2]
- 공인 - 대동법 시행 뒤 관청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사서 바치던 어용 상인. 도고(독점적 도매상)로 성장하기도 했다.
- 사상 - 한양의 경강상인(한강 수운), 개성의 송상(인삼, 송방), 의주의 만상(청과 무역), 동래의 내상(일본과 무역)이 대표적이다. 정조 때 신해통공(1791)으로 육의전을 뺀 시전의 금난전권이 없어져 사상의 활동이 자유로워졌다. 서울에서는 종로 시전 거리와 함께 난전 상인의 상설 시장인 동대문 안 이현과 남대문 밖 칠패가 3대 시장으로 자랐다.
- 장시와 포구 - 5일장이 일반화되고 보부상이 장시를 오가며 물건을 팔았다. 포구에서는 객주·여각이 숙박·위탁 매매·금융을 맡았다.
- 대청 무역 - 의주 건너편 중강에서 열린 공무역인 중강 개시(임진왜란 중인 1593년 처음 열림)와, 개시를 틈타 생겨난 사무역인 중강 후시·책문 후시가 있었다.
- 대일 무역 - 부산의 왜관에서 개시와 후시가 이루어졌다. 1678년 초량으로 옮긴 뒤 초량 왜관이 중심이 되었다.
- 상평통보 - 1633년(인조 11) 처음 주조했으나 널리 쓰이지 못했고, 1678년(숙종 4) 다시 주조해 법화로 삼은 뒤 전국에 유통되었다(→ 숙종 (조선)).
- 전황 - 지주와 상인이 동전을 재산으로 쌓아 두는 바람에 시중에 돈이 모자라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익은 화폐 사용을 반대하는 폐전론을 폈다.
- 신용 거래가 늘어 환·어음이 쓰였다.
- 전기수 - 『춘향전』·『심청전』 같은 한글 소설을 장터나 거리에서 읽어 주고 돈을 받던 낭독가. 재미있는 대목에서 읽기를 멈추어 청중이 돈을 던지게 했다.[3]
- 세책가 - 소설책을 빌려주고 돈을 받던 곳. 한글 소설이 널리 읽히는 통로가 되었다.
- 판소리·탈춤·민화·풍속화가 유행했다.
| 사실 | 시대 |
|---|---|
| 담배·면화 등 상품 작물 재배, 덕대의 광산 경영, 중강 개시·후시, 상평통보 유통 | 조선 후기 |
| 솔빈부의 말이 특산물로 유명함 | 발해 |
| 해동통보·삼한통보·활구 주조, 소에서 물품 생산, 벽란도 무역 | 고려 |
| 동시전을 두어 시장을 감독함 | 신라 (→ 동시전) |
| 직전법·관수관급제 실시 | 조선 전기 (→ 조선 전기의 토지 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