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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왕(東城王, ?~501, 재위 479~501)은 백제의 제24대 왕으로, 웅진 천도 뒤 흔들리던 왕권을 신진 세력 등용으로 다시 세우고, 493년 신라 소지 마립간과 혼인 동맹을 맺어 고구려에 맞섰다.

웅진 시기 백제의 왕성이던 공주 공산성

이름은 모대(牟大) 또는 마모이고, 문주왕의 아우 곤지의 아들이다. 오랫동안 왜에 머물다가 삼근왕이 일찍 죽자 479년 왕위에 올랐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게 한성을 잃고 웅진(공주)으로 옮긴 뒤 백제는 해씨·진씨 같은 한성 시기 귀족들의 다툼으로 문주왕과 삼근왕이 잇따라 일찍 죽는 혼란을 겪고 있었다.[1]

  • 왕권 회복 - 금강 유역에 기반을 둔 사씨·연씨·백씨 등 신진 세력을 좌평에 앉혀 한성에서 내려온 귀족을 견제했다. 사약사를 내법좌평, 백가를 위사좌평, 연돌을 병관좌평으로 삼았다.[2]
  • 신라와 혼인 동맹(493) - 동성왕 15년 3월 신라에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하자 신라 소지 마립간이 이찬 비지의 딸을 보냈다. 433년 비유왕과 눌지 마립간 때 맺은 나제 동맹이 혼인으로 한층 굳어졌다. 494년과 495년에는 고구려의 공격을 받은 신라와 백제가 서로 군대를 보내 도왔다. 비지의 관등을 백제본기는 이찬으로, 신라본기는 이벌찬으로 달리 적는다.[3]
  • 대외 교류 - 남제에 사신을 보내 중국과의 외교를 다시 열었다.
  • 탐라 복속(498) - 탐라가 공물을 바치지 않자 몸소 무진주(광주)까지 내려가니 탐라가 사신을 보내 사죄했다.
  • 방어 시설 - 탄현에 목책을 세워 신라에 대비하고 가림성을 쌓았다.
  • 최후(501) - 궁 동쪽에 임류각을 짓고 잔치를 자주 열어 비판을 받았다. 가림성을 지키게 한 위사좌평 백가가 불만을 품고 보낸 자객의 칼에 맞아 501년 죽었다. 뒤를 이은 무령왕이 백가의 반란을 진압했다.

웅진 시기 백제 왕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업적 왕
한성 함락 뒤 웅진 천도(475) 문주왕
신라 소지 마립간과 혼인 동맹(493), 탐라 복속 동성왕
22담로에 왕족 파견, 양과 교류 무령왕
사비 천도, 국호 남부여(538) 성왕
  1. ↑ 『삼국사기』 권26 백제본기 동성왕, 동성왕이 즉위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2. ↑ 동성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3. ↑ 『삼국사기』 권26 백제본기 동성왕 15년 3월, 신라와 혼인관계를 맺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