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장수왕(長壽王, 394~491, 재위 413~491)은 고구려의 제20대 왕으로, 427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남진 정책을 펴 475년 백제의 한성을 함락하는 등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장수왕의 무덤으로 보는 견해가 많은 지안의 장군총

이름은 거련(巨連)이고 광개토 대왕의 맏아들이다. 79년 동안 왕위에 있었고 98세에 죽어 '장수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즉위 이듬해인 414년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는 광개토 대왕릉비를 세웠다. 중국의 남조(동진·송·남제)와 북조(북위)는 물론 북방의 유연과도 사신을 주고받는 다원적인 외교로 서쪽 국경을 안정시킨 뒤, 남쪽으로 세력을 넓혔다.[1]

  • 평양 천도(427) - 『삼국사기』는 장수왕 15년에 도읍을 평양으로 옮겼다고 적는다. 국내성(지금의 중국 지린성 지안)에 뿌리를 둔 귀족 세력을 누르고, 넓은 평야를 바탕으로 경제 기반을 넓히려는 뜻이었다.[2]
  • 한성 함락(475) - 승려 도림을 보내 백제의 국력을 소모시킨 뒤, 장수왕 63년 9월 몸소 군사 3만 명을 이끌고 백제의 도읍 한성을 쳐서 함락하고 개로왕을 죽였다. 백제는 문주왕 때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겼다.[3]
  • 신라 압박 - 처음에는 신라 눌지 마립간의 즉위에 관여할 만큼 우위에 있었으나, 신라가 백제와 손잡자(나제 동맹) 468년 실직주성, 481년 호명성 등을 빼앗았다. 충주 고구려비는 이 시기 고구려의 남진과 신라와의 관계를 보여 준다.
  • 북연 왕의 망명 - 436년 북위에 쫓긴 북연 왕 풍홍을 받아들이고 북위의 송환 요구를 거절했다.
  • 남쪽으로 아산만에서 죽령에 이르는 넓은 영역을 차지했다. 491년 죽자 북위는 높은 칭호를 추증하고 시호를 '강'이라 했다.
  • 『삼국사기』는 413년에 즉위했다고 적지만, 광개토 대왕릉비에 따르면 광개토 대왕이 412년에 죽었으므로 412년에 즉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재위 끝 해도 백과사전 첫머리는 490년으로 적으나 본문과 『삼국사기』는 491년에 죽었다고 적는다.[4]

천도한 왕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천도 연도 왕
국내성 → 평양 427 장수왕(고구려)
한성 → 웅진 475 문주왕(백제)
웅진 → 사비, 국호 남부여 538 성왕
개경 → 강화도 1232 고려 고종·최우 (→ 고려 몽골 전쟁)
개경 → 한양 1394 조선 태조

고구려의 정복 군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업적 왕
서안평 점령(311), 낙랑군 축출(313) 미천왕
태학 설립, 율령 반포, 불교 수용 소수림왕
영락 연호, 신라에 침입한 왜 격퇴 광개토 대왕
평양 천도, 한성 함락, 충주 고구려비 장수왕
  1. ↑ 장수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삼국사기』 권18 고구려본기 장수왕 15년,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3. ↑ 『삼국사기』 권18 고구려본기 장수왕 63년 9월, 백제 도성을 함락시키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4. ↑ 『삼국사기』 권18 고구려본기 장수왕, 장수왕이 즉위하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