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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민관 폭파 의거(府民館爆破義擧, 1945)는 광복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1945년 7월 24일 대한 애국 청년당의 조문기·유만수·강윤국 등이 서울 부민관에서 열린 친일 집회장에 폭탄을 터뜨린 일로, 일제 강점기 마지막 의열 투쟁으로 꼽힌다. 부민관 투탄 의거라고도 한다.

일제 강점기의 경성 부민관(지금의 서울특별시의회 건물)

1945년 7월 친일파 박춘금이 이끄는 대의당은 경성 부민관에서 '아세아 민족 분격 대회'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연이은 패전으로 사기가 떨어진 일본과 식민지 민중을 태평양 전쟁에 끌어들이려는 어용 집회였고, 조선 총독과 조선군 사령관, 중국·만주국·일본 쪽 대표들이 연사로 나설 예정이었다.[1]

대한 애국 청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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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수·강윤국·조문기 등은 일본 가와사키의 일본강관 공장에서 함께 일하며 뜻을 모은 청년들이었다. 귀국한 이들은 1945년 서울에서 비밀 결사 대한 애국 청년당을 만들고 유만수를 임시 의장으로 삼아 친일파 처단과 식민 통치 기관 파괴를 결의했다. 결성 시기를 독립기념관은 1945년 초순으로 적고, 다른 자료는 3월·5월 등으로 달리 적는다.[2]

  • 준비 - 유만수는 수색 변전소 공사장에 취직해 다이너마이트를 조금씩 빼내 폭탄 2개를 만들었다. 강윤국은 만일에 대비해 권총을 구했다.
  • 설치 - 대회 전날 밤 부민관 뒷담을 넘어 들어가 무대 뒤 화장실로 통하는 통로 등에 폭탄을 장치했다.
  • 폭발 - 7월 24일 저녁 박춘금이 연설하던 중 폭탄이 터져 대회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부민관 투탄 의거」 항목은 대의당원이 폭탄 선을 잘못 건드려 예정보다 일찍 터졌다고 적고, 「대한 애국 청년당」 항목은 청중이 다칠 것을 염려해 폭탄을 연단 대신 화장실에 설치해 터뜨렸다고 적어 경위 서술이 엇갈린다.
  • 결과 - 노린 인물들을 죽이지는 못했지만 대회는 무산되었다. 일제가 현상금을 걸고 수색했으나 당원들은 지리산·경기도 화성 등지에 숨어 붙잡히지 않은 채 광복을 맞았다. 강윤국·유만수는 1990년 건국 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다른 의열 투쟁과 구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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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거 연도 주체
이봉창 의거(도쿄) 1932 한인 애국단(김구)
윤봉길 의거(상하이 훙커우 공원) 1932 한인 애국단(김구)
김상옥 종로 경찰서 투탄 1923 의열단
부민관 폭파 의거 1945 대한 애국 청년당
  1. ↑ 부민관 투탄 의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
  2. ↑ 마지막 의열투쟁, 부민관폭파의거의 주인공 강윤국·유만수, 월간 독립기념관 2023년 7월호, 독립기념관,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