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말살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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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말살 통치(民族抹殺統治)는 1930년대 후반부터 1945년 광복까지 일제가 한국인을 '황국 신민'으로 만들어 민족 정체성을 없애고, 침략 전쟁에 사람과 물자를 강제로 동원한 식민 통치 방식이다.
일제는 1931년 만주 사변, 1937년 중일 전쟁, 1941년 태평양 전쟁으로 침략을 넓히면서 한반도를 대륙 침략의 병참 기지로 삼았다. '내선일체'(일본과 조선은 한 몸)와 '일선동조론'(일본과 조선은 조상이 같다)을 내세워 한국어와 한국식 이름, 민족 문화를 없애려 했다. 1936년 부임한 총독 미나미 지로 때 본격화되었으며, 황국 신민화 정책이라고도 한다.[1]
- 황국 신민 서사(1937) - "우리는 대일본 제국의 신민이다"로 시작하는 맹세문을 학교·관청·집회에서 날마다 외우게 했다.
- 신사 참배·궁성 요배 - 각지의 신사에 참배하게 하고, 일본 왕궁이 있는 동쪽을 향해 절하는 궁성 요배(동방 요배)를 강요했다. 신사 참배를 거부한 기독교 학교는 문을 닫았다.
- 제3차 조선 교육령(1938) - 학교 이름을 일본과 같게 바꾸고 조선어를 선택 과목으로 돌려 사실상 가르치지 않게 했다. 1941년에는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고쳤고, 1943년 제4차 조선 교육령으로 조선어 교육을 없앴다.
- 창씨개명 - 1939년 조선 민사령을 고쳐 1940년부터 일본식 성과 이름을 쓰게 했다. 따르지 않으면 자녀의 입학을 막고 행정 기관에서 민원을 받지 않는 등 불이익을 주었다.
- 언론·학술 탄압 - 1940년 『조선일보』·『동아일보』를 폐간했고, 1942년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한글 학자들을 잡아 가두었다. 1941년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으로 독립운동가를 재판 없이 가둘 수 있게 했다(→ 치안 유지법).
- 국가 총동원법(1938) - 전쟁에 필요한 인력·물자를 정부가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게 한 법으로, 조선에도 그대로 시행되었다.
- 말단 조직 - 1938년 국민 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을 만들고 그 아래 10호 단위의 애국반을 두어 주민을 감시하고 동원했다. 1940년 국민 총력 조선 연맹으로 바뀌었다.
- 인력 동원 - 육군 특별 지원병제(1938), 국민 징용령(1939), 학도 지원병제(1943), 징병제(1944 시행)로 청년을 전쟁터와 광산·공장에 끌고 갔다. 여자 정신 근로령(1944)으로 여성도 동원했고, 많은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을 겪었다.
- 물자 수탈 - 미곡 공출제와 식량 배급제를 실시했다. 국방 헌금을 거두고, 금속류 회수령으로 놋그릇·솥·숟가락 같은 생활용품까지 걷어 갔다.
- 전시 생활 통제 - 국민 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 등이 국민복(국민 표준복)과 여성의 몸뻬 착용을 권하고 근검절약을 내세워, 옷차림과 일상생활까지 전시 체제에 맞추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