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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成均館)은 조선이 인재를 기르려고 한양에 세운 최고 국립 교육 기관으로, 원칙적으로 생원시·진사시에 합격한 사람에게 입학 자격을 주어 유학을 가르쳤다.

고려의 국자감이 충선왕 때 성균관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공민왕 때 순수한 유학 교육 기관으로 개편된 것이 그 뿌리이다. 조선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뒤 1395년(태조 4) 숭교방(지금의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공사를 시작해 1398년 문묘와 강학 공간을 완성했다.[1]

성균관은 제사 공간과 교육 공간을 함께 갖춘 전묘후학의 구조였다.

  • 대성전 - 공자와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석전)를 지내는 문묘의 중심 건물.
  • 명륜당 - 강의하는 건물.
  • 동재·서재 - 유생이 머무는 기숙사.
  • 존경각 - 도서관.
  • 양현고 - 유생의 식량과 물품을 대는 기관.
  • 탕평비 - 1742년 영조가 탕평의 뜻을 새겨 세운 비석.
  • 관원 - 『경국대전』 체제에서는 정3품 대사성이 실무를 이끌고 그 아래 사성·사예·직강·전적·박사·학정·학록·학유를 두었으며, 정2품 지사와 종2품 동지사는 다른 관직자가 겸했다. 조선 후기에는 정3품 좨주와 정4품 사업을 새로 두었다.[1]
  • 정원 - 처음 150명이었다가 1429년(세종 11) 200명으로 늘었다. 임진왜란 뒤에는 크게 줄었다.
  • 입학 자격 - 『경국대전』에 따르면 생원과 진사가 정규 입학 대상이었다(상재생). 정원이 차지 않으면 사학(4부 학당) 학생 가운데 시험을 거친 사람, 공신과 3품 이상 관리의 적자 등도 들어올 수 있었다(하재생·기재생).
  • 원점 - 식당에 들어갈 때 명부(도기)에 서명해 출석 점수를 얻었고, 일정한 원점을 채워야 문과 초시에 응시할 수 있었다.
  • 관비생 - 기숙사 생활에 드는 식량과 물품을 모두 나라에서 받았다.
  • 유생의 집단 행동 - 조정의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상소를 올렸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권당(식당에 들어가지 않는 수업 거부)이나 공관(성균관을 비우고 나가는 동맹 휴학)으로 맞섰다.

조선의 교육 기관

편집 원본 편집
  • 성균관 - 한양의 최고 국립 교육 기관.
  • 4부 학당 - 한양의 중등 관학. 문묘가 없다.
  • 향교 - 지방 부·목·군·현에 하나씩 둔 중등 관학.
  • 서원 - 사림이 세운 사립 교육 기관. 1543년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이 처음이다.
  • 서당 - 마을의 초등 교육 기관.

다른 시대의 교육 기관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교육 기관
생원시·진사시 합격자에게 입학 자격 성균관(조선)
7재 설치, 양현고 설립 국자감(고려)
신문왕이 설치, 박사와 조교가 유학 교육 국학(통일 신라)
전국의 부·목·군·현에 설치 향교
  1. ↑ 1.0 1.1 성균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