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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鄕校)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지방의 유학 교육과 성현 제사를 맡은 국립 교육 기관으로, 조선에서는 전국의 부·목·군·현에 하나씩 두었다.

고려 성종이 12목에 경학박사를 보내 지방 교육을 시작했고, 1127년(인종 5) 여러 주에 학교를 세우라는 조서를 내리면서 지방 학교인 향학이 자리를 잡았다. 조선은 유교 이념을 지방까지 퍼뜨리려고 '한 고을에 한 향교'를 원칙으로 모든 군현에 향교를 세웠다. 나라에서 학전(토지)과 학노비를 내려 운영 경비를 댔다.[1]

  • 대성전 - 공자와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봄·가을에 석전을 지냈다.
  • 명륜당 - 학생을 가르치는 강당.
  • 동재·서재 - 학생의 기숙사.
  • 교육 - 『소학』과 사서오경 등 유학을 가르쳐 생원시·진사시를 준비하게 했다.
  • 교화 - 향음주례·향사례 같은 의식을 치러 지방에 유교 풍속을 퍼뜨렸다.
  • 교관 - 큰 고을에는 문과 급제자인 교수(종6품)를, 작은 고을에는 훈도(종9품)를 보냈다. 교관 자리를 꺼리는 일이 많아 생원·진사나 지방의 학식 있는 사람을 훈도나 학장으로 삼기도 했다.
  • 정원 - 『경국대전』은 고을 크기에 따라 부·대도호부·목 90명, 도호부 70명, 군 50명, 현 30명으로 정했다.
  • 학생 - 주로 양반 자제와 향리의 자제가 다녔다. 향교 학생(교생)은 군역을 면제받았기 때문에 군역을 피하려고 이름만 올리는 사람이 늘기도 했다.
  • 쇠퇴 - 16세기 이후 사림이 세운 서원이 늘면서 향교의 교육 기능은 약해지고 제사 기능이 중심이 되었다.

다른 교육 기관과 구별하기

편집 원본 편집
사실 교육 기관
전국의 부·목·군·현에 하나씩 둠, 교수·훈도 파견 향교
한양에 둔 중등 관학, 문묘가 없음 4부 학당(조선)
생원·진사에게 입학 자격 성균관(조선)
사림이 세운 사립 교육 기관, 백운동 서원이 처음 서원(조선)
7재 설치, 양현고 설립 국자감(고려)
신문왕이 설치, 박사와 조교가 유학 교육 국학(통일 신라)
  1. ↑ 향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8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