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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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부동(搖之不動)은 흔들어도 꼼짝하지 아니한다는 뜻의 한자성어이다.[1]
무거운 물건이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에서 나아가, 사람이 자기 생각이나 태도를 조금도 바꾸지 않는 모습을 이르는 데 주로 쓴다. 신념을 지키는 굳은 태도를 칭찬할 때도 쓰지만, 요즘 한국어에서는 설득이나 요구에도 꿈쩍하지 않는 고집, 좀처럼 바뀌지 않는 제도·관행·수치를 비판적으로 말할 때 더 자주 쓴다.
중국어에서는 搖之不動을 성어로 쓰지 않으며, 대만 교육부 《성어전》에도 표제어로 없다. 꼼짝하지 않는 모습은 紋絲不動(실오라기만큼도 움직이지 않음), 뜻을 굽히지 않는 태도는 堅定不移(굳게 정해 옮기지 않음) 같은 말로 나타낸다.[2] 일본어 사전(코토뱅크)에서도 이 네 글자 형태는 찾아지지 않는다.
특정 고사에서 나온 말이 아니며, 한문의 ‘○之不○’ 짜임이 굳은 말이다. ‘부르되 오지 않고 흔들되 움직이지 않는다’처럼 짝을 지어 쓰는 경우가 많다.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는 동진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 〈좌자(左慈)〉에 보인다. 도술가 좌자가 오나라 사람 서수(徐隨)의 집을 찾아갔다가 문객들에게 따돌림을 당하자, 문객들의 수레바퀴 통에 가시나무가 한 자나 돋아나 “베어도 끊어지지 않고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았다(斫之不斷,搖之不動)”고 한다.[3] 이후 명청 소설에도 깊이 잠들거나 정신을 잃은 사람을 흔들어도 깨지 않는 모습으로 자주 쓰였다.
사람의 굳은 절개를 두고는 같은 뜻의 撼之不動(흔들어도 움직이지 않음)이 더 흔하다. 《민중이학연원고(閩中理學淵源考)》는 남송 관리 한 사람을 “부르되 오지 않고 흔들되 움직이지 않았다(招之不來,撼之不動)”고 평했다.[4]
조선 문인들은 搖之不動을 사람의 절개나 뜻을 칭찬하는 말로 썼다. 권헌(權攇)은 전라 감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진 인재란 “물리쳐도 가지 않고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으며 우뚝 홀로 서서(麾之不去。搖之不動。卓然特立)” 나라의 앞날을 맡길 만한 사람이라고 했다.[5] 구한말 유인석(柳麟錫)도 학계의 선비들에게 “떨쳐 일으켜 나란히 서되, 흔들어도 움직이지 말라(振之齊立。搖之不動)”고 당부했다.[6] 한편 유진(柳袗)의 〈유청량산일기(遊淸凉山日記)〉에는 흔들면 움직인다는 바위를 손으로 흔들어 보았으나 “움직이지 않자(以手搖之不動)” 스님이 속였다며 크게 웃었다는 대목이 있어, 글자 그대로의 쓰임도 볼 수 있다.[7]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搖之不動이 한 건도 없다. 국역문에 네 번 나오는 ‘요지부동’은 원문의 다른 표현을 옮긴 것이다. 선조 35년(1602) 사관은 조선의 재물을 긁어 간 명나라 사신 고천준(顧天埈)의 하인이 지었다는 시를 적었는데, 원문 “오직 청산만은 옮기려 해도 움직이지 않으니(惟有靑山移不動)”를 국역은 “오로지 청산만은 옮기려 해도 요지부동”으로 옮겼다.[8] 고종 1년(1864) 영의정 조두순(趙斗淳)이 한번 재해를 입은 땅으로 올라가면 그대로 굳어 버리는 폐단을 말한 “撼動不得”도 국역에서는 ‘요지부동’이 되었다.[9] 오늘날의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국역 과정에서도 그대로 쓰인 셈이다.
- 보안팀이 몇 번이나 취약점을 보고했지만 담당 부서는 “지금까지 문제없었다”며 요지부동이었다.
- 금리를 내렸는데도 대출 이자는 요지부동이다.
- 아무리 설득해도 할아버지는 고향 집을 떠나지 않겠다며 요지부동이셨다.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요지부동”,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Result.do?searchKeyword=%EC%9A%94%EC%A7%80%EB%B6%80%EB%8F%99, 확인날짜=2026-09-30.
- ↑ 대만 교육부 《성어전(成語典)》 2020, “紋絲不動”,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13403 · “堅定不移”, https://dict.idioms.moe.edu.tw/idiomView.jsp?ID=9338, 확인날짜=2026-09-30.
- ↑ 갈홍(葛洪), 《신선전(神仙傳)》 권8 〈좌자(左慈)〉.
- ↑ 이청복(李清馥), 《민중이학연원고(閩中理學淵源考)》 권21.
- ↑ 권헌(權攇), 《진명집(震溟集)》 〈여호남관찰서(與湖南觀察書)〉; 한국고전종합DB 문집 원문 검색 “搖之不動”, https://db.itkc.or.kr/, 확인날짜=2026-09-30.
- ↑ 유인석(柳麟錫), 《의암집(毅菴集)》 〈후조재학계서(後凋齋學契序)〉.
- ↑ 유진(柳袗), 《수암집(修巖集)》 〈유청량산일기(遊淸凉山日記)〉.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48권, 선조 35년 3월 19일 신사 2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na_13503019_002, 확인날짜=2026-09-30.
-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 1권, 고종 1년 11월 20일 정사 1번째 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wza_10111020_001, 확인날짜=20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