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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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衛滿, ?~?)은 기원전 2세기 초 연나라 땅에서 고조선으로 망명했다가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인물로, 이른바 위만 조선을 세웠다.
기원전 195년 무렵 한의 연왕 노관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흉노로 달아나자, 그 아래에 있던 위만도 무리 1천여 명을 이끌고 망명했다. 『사기』 조선열전은 그가 상투를 틀고 오랑캐 옷을 입은 채 동쪽으로 와서 패수를 건넜고, 진나라 때 비워 둔 상하장 땅에 머물렀다고 적었다.[1]
- 준왕의 신임 - 『삼국지』가 인용한 『위략』에 따르면, 위만은 고조선의 준왕에게 서쪽 변방에 살게 해 달라고 청했다. 준왕은 그를 믿어 박사로 삼고 100리 땅을 주어 서쪽 변경을 지키게 했다.[2]
- 왕위 찬탈 - 위만은 망명자들을 모아 세력을 키운 뒤, 한나라 군대가 쳐들어온다고 거짓으로 알리고 왕을 지키겠다며 도성으로 들어와 준왕을 공격했다. 준왕은 패해 남쪽으로 내려가 한(韓)의 땅에서 스스로 한왕이라 했다고 전한다.[3]
- 연대 - 왕위를 빼앗은 해는 분명하지 않다. 『사기』는 한 혜제와 여태후 때(기원전 194~180)라고만 했고, 흔히 기원전 194년 무렵으로 잡는다.[3]
위만은 왕검성(왕험성)에 도읍하고 나라 이름을 그대로 '조선'이라 했다. 한의 요동 태수와 약속해 한의 외신이 되는 대신 군사와 물자를 지원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웃의 진번과 임둔을 복속시켜 사방 수천 리를 다스렸다. 철기 문화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였고, 남쪽의 진(辰)과 한 사이의 교역을 중계해 이익을 얻었다.[3]
손자 우거왕 때 한과 맞서다가 기원전 109년 한 무제의 침공을 받았다. 한은 누선장군 양복이 이끄는 수군과 좌장군 순체가 이끄는 육군을 보내 왕검성을 에워쌌으나 성이 쉽게 함락되지 않았고, 기원전 108년 지배층의 내분 끝에 고조선은 멸망했다(→ 고조선).
- ↑ 『사기』 권115 조선열전, 연왕 노관이 한을 배반하고 흉노로, 중국정사 조선전,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 ↑ 2.0 2.1 『사기』 권115 조선열전, 조선왕 만은 옛날 연나라 사람이다, 중국정사 조선전,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6-10-19 확인. 주석에 『위략』 기사가 함께 실려 있다.
- ↑ 3.0 3.1 3.2 3.3 위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6-10-19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