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철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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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철기 시대는 기원전 5세기 무렵 중국에서 철기가 들어온 뒤 철제 농기구와 무기가 퍼지고, 세형 동검으로 대표되는 독자적인 청동기 문화가 꽃피며 여러 나라가 자라난 시기이다.
철기는 중국 전국 시대에 연나라 등을 거쳐 압록강 중류와 한반도 서북부로 먼저 들어왔다. 처음에는 거푸집에 부어 만든 주조 철기, 그 가운데서도 농기구가 많았다. 기원전 108년 한이 고조선 땅에 낙랑군을 둔 뒤 철기 문화가 한반도 남부까지 빠르게 퍼졌고, 영남 지역에서는 철을 직접 생산해 낙랑·대방과 왜에 수출했다. 철기를 쓰면서 농업 생산력이 크게 늘고 정복 전쟁이 활발해져, 부여·고구려·옥저·동예·삼한 같은 초기 국가가 성장했다.[1]
시대 구분에 따라 기원전 300~100년 무렵을 초기 철기 시대, 그 뒤 삼국이 자리 잡기 전까지를 원삼국 시대(삼한 시대)로 나누어 부르기도 한다.
- 철제 농기구 - 쟁기·쇠스랑·호미·괭이·낫·도끼 등으로 땅을 깊이 갈고 개간을 넓혔다.
- 철제 무기 - 철검·쇠창·쇠화살촉 등이 쓰이면서 청동기는 점차 의례용으로 바뀌었다.
- 세형 동검 - 날이 곧고 가는 한국식 동검. 비파형 동검을 이어 한반도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거푸집(용범)이 함께 나와 한반도 안에서 직접 청동기를 만들었음을 보여 준다.
- 잔무늬 거울 - 뒷면에 가는 선으로 정교한 무늬를 새긴 청동 거울로, 청동기 시대의 거친무늬 거울을 이었다.
- 중국 화폐 - 명도전·반량전·오수전이 나와 중국과 활발히 교류했음을 알려 준다.
- 붓 - 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 나온 붓은 한자를 썼다는 증거로 꼽힌다.
- 토기 - 덧띠 토기와 검은 간 토기가 쓰였고, 뒤에 두드려 만든 회색의 단단한 토기가 나타났다.
- 주거 - 지상 가옥이 늘었고, 중부 지방에서는 여(呂)자형·철(凸)자형 집터가 나타났다. 부뚜막과 구들 시설도 보인다.
- 무덤 -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넣은 널무덤(토광묘)과 큰 항아리 두 개를 이어 붙인 독무덤이 대표적이다.
- 유적 - 사천 늑도·해남 군곡리·김해 봉황대 조개더미, 광주 신창동, 경주 황성동 제철 유적 등이 있다.